• 최종편집 2021-12-03(금)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인류 행복을 지향하는 하모니의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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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 17:26)라는 말씀을 앞에서 잠시 소개하였었다. 이는 하나님 섬김으로부터 인류봉사까지 성경적 효, 또는 현대적 효의 교육목표의 근원이며 배경이 된다. 그리고 현대적 효는 동양의 전통적 효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예기(禮記)』에서 열 가지 의(義)를 설명한다. 이 의(義)는 인(仁)을 모범으로 삼으며, 공자는 인을 모든 일의 근본이라 말한다. 그리고 맹자는 이 의(義)를 사회의 공의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열 가지 의란 바로 부자(父慈), 자효(子孝), 형량(兄良), 제제(弟弟), 부의(夫義), 부청(婦聽), 장혜(長惠), 유순(幼順), 군인(君仁), 신충(臣忠)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를 다섯으로 짝지어 설명할 수 있다. 부자자효(父慈子孝), 형량제제(兄良弟弟), 부의부청(夫義婦聽), 장혜유순(長惠幼順), 군인신충(君仁臣忠)이 다. 즉, 아버지는 자애하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청종하며, 어른은 베풀며, 어린이는 순응하며, 임금은 인애하고, 신하는 충심을 다한다. 다만, 오륜(五倫)에서 말한 바와 다름은 형제(兄弟)와 붕우(朋友)가 대체되었을 뿐이다.

 

이는 공자가 주창한 유가(儒家) 효의 근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전통문화는 공동체 사회의 문화이고, 공동체는 사람의 모임이 중심이다. 그러한 연유로 부부의 만남으로부터 출발하여, 부모·자녀, 형제간 등의 가정 내 관계를 이어가는 지혜에 대한 지침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어른과 젊은이, 혹은 친구 간의 사회적 관계 예절, 더 나아가 임금과 신하 즉, 현대적 이해로 직장 상사와 소속원 혹은 나라와 국민의 관계 등을 전제하며, 인간관계론을 펼쳐왔다. 이는 부모·자녀로부터 출발한 효의 확장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고자 하였던 동양전통사회의 큰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는 현대의 하모니 효에 다름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적 하모니 효의 최종적 관심은 인류에 대한 봉사에 있다고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과학 문명에 힘입어 전 인류가, 전 지구촌이 하나의 공동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구 한 켠에서 발생되는 환경오염, 질병발생이 결고 나와 우리, 그리고 내가 소속된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문제가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요,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이 자원 고갈만의 문제가 아니요, 국가 간, 종족 간 분쟁과 빈부의 격차에 따른 생활의 고통 등이 그들의 어려움이 아닌, 세계인의 소멸 신호탄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과거 위력적 무기를 확보한 종족이 약체 민족을 점령하고 지배하며,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면, 이제 이 지구는 무력으로 점령하고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라, 각자가 소유한 자원과 능력을 연합하여 상생하는 “하모니 효”의 정신을 계발하여야 할 시점인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부자자효”가 효의 근원이었다면, 이제는 인류에 봉사하는 정신이 효의 근원이 되어야만 한다. 거칠게 말해서, 농경중심의 봉건사회체제 유지를 위한 가족을 집단 통제화하는 수단으로 효를 사용하면서, 효 정신을 발전 시켜왔을지라도, 분명 효에 내포된 숭고한 정신이 있음은 사실이다. 이를 발전시켜 “부자자효”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효를 가족 내에만 머물러있게 해서는 안 된다.

 

가깝게는 이웃에 대한 봉사, 폭을 넓혀 본다면 전 지구인으로 확장해 나감이 당연시 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이웃의 불행이 결코 내게 전하여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으랴, 가까이에 있는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 그 불을 달려가 끄게 됨은 누구에게나 ‘측은지심’의 ‘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옆집의 불을 끄지 않는다면, 그 불이 내게 옮겨 붙기 때문이라도 꺼야 하는 것이다. 비단 ‘불’ 만이겠는가? 부모, 형제, 이웃의 순서대로 자신의 어려움이 그 형제에게, 그 이웃에게 전가되어가는 일들이 생기지 않는가? 매사가 한가지 일 것이다. 이웃의 불편과 불행을 방치한다면, 결국 이웃인 나에게 그 피해가 전해 오지 않겠는가? 그러한 피해가 커져서 내게 나쁜 영향을 전해오기 전에 이웃과 형제를 돌보아 함께 상생해나가는 것이 효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은 이번에 아프카니스탄의 내전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분명 목도한 바가 있었으며, 코로나-19라는 질병이 우리와는 무관하게 시작되었을지라도 직접적인 폐해가 수없이 드러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이웃과 인류는 한 가족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이제 효는 가족에서만 머무를 수 없는 현대인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야 하겠다. 가족의 범위가 혈연을 중심으로 한 내 핏줄의 가족에만 한정할 수 없는 까닭인 것이다. 물론 내 핏줄의 가족이 더욱 단단한 가족애를 공유해야함은 마땅한 일이며, 그런 후에는 이웃과 전 지구인의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봉사”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적 사회에서 ‘부자자효’로 시작된 인간관계는 이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인류봉사’의 정신으로 재무장되어야 할 때가 되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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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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