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고통은 가슴으로 듣는다.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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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10여년전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상담심리분야에 관심이 많아 온누리교회에서 상담과 치유에 관한 교육을 6개월간 수강한 적이 있다. 토요일마다 진행되었는데, 그당시 어느 상담심리학 교수의 강의가 아직도 큰 울림으로 마음속에 남아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도 살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고통을 받은 적이 있을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하신분들이 나중에 똑같은 고통속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소중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화를 소개해 볼게요. 어떤 사람이 인기척이 전혀 없는 한적한 밤에 발을 헛딪여 뚜껑이 열려있는 맨홀에 빠져 버렸어요. 빛하나 없이 어둡고 깊은 맨홀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살려주세요’를 밤새 외쳤지요. 몸과 마음이 절망속에서 지쳐갈 즈음 맨홀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마침내 들여다 보게 되었죠. 그런데 ‘잠깐만 기다리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 사람은 맨홀안으로 뛰어 들었어요. 맨홀에 빠져있던 사람은 너무나 황당해서 ‘당신 미쳤냐? 이 맨홀에서 같이 죽으려고 내려왔냐’ 라는 말을 하며 화를 내고 절망하고 말았죠.

 

그런데 맨홀에 내려온 사람은 잠시후 얼굴에 알 수 없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얼마전에 저도 이 맨홀에 빠지고 혼자 빠져나온 사람이예요 내가 나가는 길을 알고 있으니 저를 따라오세요’ 라는 말을 하며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켜더랍니다. 맨홀에 뛰어든 사람은 그 사람의 손을 붙잡고 다른쪽 배수구로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해요. 제가 여러분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아시겠죠?”

 

며칠전 일이다. 8여년간 6번의 암 수술의 고통을 겪고 끝내는 완치판정을 받은 분당서울대 암환자환우회 신효덕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10여년전에 상담심리학 교수에게 들었던 강의내용이 불현듯 생각났다.

 

누구나가 그러하겠지만 신회장 또한 암수술 받으면서 겪었던 심적인 고통과 절망이 암보다 더 두려웠다고 한다. 병원이야기만 들어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것도 같은데 그때의 힘든 병원생활과 경험이 오히려 암 환자 환우회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단다.

 

 

환우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과 고통속에 있는 암환자들과 정서적인 교감 및 완치의 경험을 나누면서 암을 이겨낼수 있는 의지를 환자들에게 북돋아 주고 싶다는 것이라고 한다. 얼마전까지 사경을 헤매며 고통속에 있었던 환우회 환자들이, 지금 암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면서 조건없이 그들을 돕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맨홀속으로 뛰어든 사람의 마음을 보게된다.

 

그리고 신회장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암환자의 수술 후 예후관리나 재발방지를 위한 힐링센터를 설립하고자 한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피력했다. 특히 그곳에서 근무할 의사, 간호사는 암을 이겨낸 사람만을 채용할 것이라는 특별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는 암을 겪어본 사람만이 암환자의 고통과 두려움을 진정으로 교감하고 나눌 수 있으며 그들에게 본인의 완치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는 경험치에서 나온 생각이라고 한다.

 

신회장은 무려 6번의 암 수술을 받았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긍정적이고 밝았다. 긍정심리학에서 언급하는 회복탄력성이 최고치에 있는 듯 보였다.

 

우리 인간성에는 ‘고통에서 피어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altruism born of suffering)’라는 심리반응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타적 반응에 놀라우리만큼의 ‘좋은 부작용’이 있는데 타인에 대한 ‘이타적 반응’은 나에게 오히려 건강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을 조건없이 도울 때 느끼는 ‘기분좋음’을 ‘헬퍼스하이(helper’s high)’라고 하는데 운동처럼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행동을 할 때 나타나는 기분좋음이 타인을 도울 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헬퍼스하이는 심리적 만족을 넘어 면역 기능강화나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등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항을 미친다는 결과가 있다. 즉 남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 행동은 행복감을 높이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등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갖게 해준다. 내가 힘들 때 오히려 힘을 내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도와주려 할 때 더 강력한 헬퍼스 하이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똑같은 고통을 받았던 사람을 더욱 도와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끊임없이 생길 수 있다는것과 그 봉사의 보답으로 오히려 자기자신에게 건강과 행복을 선사한다는 이 역설의 상황이 감사하기만 하다.

 

신회장의 개인적인 그리고 절실한 소망이 큰 어려움없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많은 암 환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병으로 고통받은 환우들이 조금이나마 심적인 위안과 교감을 누리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렇듯 우리는 나만의 고통을 넘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역치를 낮출수록 행복한 삶을 더 느낄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겪은 고통이 오히려 만나는 이를 격하게 위로하는 전이의 순간으로 변할 때 그야말로 우리 모두는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그리고 누구에게든 ‘상처입은 치유자’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가슴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의 고통에만 매몰되어 있는, 우리만의 고통만 바라보게되는 요즘 잠깐 눈을 옆으로 돌려 타인의 고통에도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들국화의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노랫말을 가슴으로 듣게 되는 여름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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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 환

- 대한병원협회 회원협력국장

- 한국병원경영학회 대외협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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