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8(화)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실시간뉴스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경」, 「삼재장」을 통한 효의 이해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경」, 「삼재장」을 통한 효의 이해 「효경」은 특별한 경전이다. 유가의 경전은 시, 서, 예, 악, 역으로 불리다가,『시경』만이 당대에 이르러『경』이 붙었고, 다른 경서는 송대에 이르러서야 십삼경이 확정되면서 경이 붙여진 반면,『효경』은 쓰여 진 당시부터 『효경』이었다. 『효경』이 『효경』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공자가 말한 것을 제자 증삼이 기록하였다는 전제로 처음부터 공자의 권위를 담기 위한 큰 그림일 수 있고, 둘째, 본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를 골라 책명으로 삼은 것이다. 「삼재장」에서 “효란,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질서이며, 사람의 행실이라(夫孝 天之經, 地之義(誼), 民之行也) 라는 중에 夫孝(부효)의 ‘효’자와 天之經(천지경)에서 ‘경’자를 취하여 명명한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세 가지 즉, 천, 지, 인 삼재(三才)는 인류 문명이 발전해 나가는데 필요한 요소로써,『주역』「계사전」에서 비롯하였다.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운행하면서 발전을 주재하는 천(天), 하늘이라 하는데, 그 절대적 도리, 하늘의 법칙, 천지경(天之經) 즉, 천도라 하고,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 만물은 땅을 기반으로 생육하고 번식하며 성장·발전하는 정황을 지지의(地之義), 즉 지덕(地德)라 한 것이다. 이를 합하여 천지지경(天地之經)이라 한다. 그리고 생성 변화하는 만물 중, 사람만이 우주천지와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여 그 도리를 터득하고 활용할 줄 앎을 피력한 것이다. 하늘은 왜 사람을 만물 중 으뜸으로 삼았을까? 『서경(書經)』에 “하늘의 일을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한다(天工人其代之也)”는 이야기로 설명에 갈음한다. 천지지경의 이야기는『성경』「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천지지경의 의미에 힘을 보태준다. 또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지지리(地之利)를 “원기(元氣)가 나뉘어 가볍고 맑은 양기(陽氣)는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음기(陰氣)는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라 하였는데, 이 역시 성경의 이야기와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주역(周易)』「태괘(泰卦) 상전(象傳)」에서 “하늘은 위에 있지만 그 기는 내려와 땅의 기와 섞이며, 땅의 기는 아래에 있지만, 그 기는 올라가 하늘의 기와 섞인다. 천지의 기가 섞여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군주는 이 태괘의 상을 본떠 천지자연의 도를 알맞게 하고, 또 봄에는 싹트고 가을에는 열매 맺으며, 수수는 높은 지대에서, 벼는 낮은 지대에서 잘자란다는 등의 천지자연의 적절함에 따라 봄에는 씨 뿌리고 가을에는 수확하며, 높은 곳에는 수수를 심고 낮은 곳에는 벼를 심어 천지자연의 적절함을 알맞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을 도와 다스린다” 하였다. 이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리이다. 여기에서 천지는 다시 부모라고 하는 설명을 본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오해가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남자, 어머니는 여자,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그래서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고 하는 식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 들었던 그런 식의 해석을 부질없이 되 뇌여 본다. 다시 돌아가서, 아버지는 하늘과 같이 법칙과 원칙을 세우고 지켜가는 역할, 어머니는 땅의 질서와 같은 길러냄의 본분을 지켜 자녀를 생육하고, 살림을 일으키는 고귀한 역할을 우주의 질서에 견주어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삼재장인 것이다. 효는 사람의 행위이지만, 천(天)과 지(地)의 원리와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일 터인 즉, 하늘의 원리를 기준삼고, 땅의 질서를 따라 세상을 살되 사람의 행실은 효가 기준이 된다면, 정사를 비롯한 모든 일이 원만해진다는 논리이다. 천도(天道)는 광명정대, 공평무사, 영구불변하지만, 형이상의 진리로 보이지 않는다. 그 도는 덕(德)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그 가운데에 사람이 존재하게 된다. 사람이 깨닫고 실천하는 민지행(民之行)을 통하여 이 땅에 덕이 펼쳐진다. 즉 지덕(地德)이라 하는데, 덕(德)은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설명된다. 한편 주희는 천지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를 낳아 새로운 존재에게 생명을 베풀어주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천지에는 덕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덕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인’이라하였다. 나아가 천지로부터 태어난 만물은 천지의 자식이니만큼, 천지의 ‘인’을 물려받아 자신의 본질로 삼아 태어나기에 만물의 본성은 ‘인’이 된다. 정리하자면, 사람은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천도로부터 깨닫고, 성실한 인행으로 지덕을 세움으로써, 이 땅을 진선미의 문화와 도덕의 세계를 만들어야하는 당위성의 대 전제가 삼재(三才)라 할 수 있겠다.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의 도리가 인의예지와 원형이정에 따라 완성됨이 삼재장에서 추구하는 효의 이야기임을 살펴보았다. 옛적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 주는 사람을 왕(王)이라 설명하였는데, 현대는 모든 사람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가는 왕의 역할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임을 삼재장의 효라 말하고 싶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9-14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제정일치 시대로 부터 고대 왕조에 비친 효Ⅰ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제정일치 시대로 부터 고대 왕조에 비친 효Ⅰ [뉴스인사이트] 요임금이 자신의 아들들을 제치고 순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며 양위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순이 효성스러웠다는 점이다. 그 효성을 대효(大孝)라 부르는데, 단순히 부모에게 효성스러움만이 아닌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릴 능력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단군신화가 있었다. 환웅이 삼위태백(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풍백, 우사, 운사)과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환웅이 무리들과 하늘나라에서 내려올 때, 동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 보았고, 환웅은 동방 사람들을 향해 “내가 하느님의 명에 따라 그대들을 다스리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환웅에게 절했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였으며, 삼위태백과 부하들에게 360여 가지 인간 세상의 일을 나눠 맡겼다. 환웅이 신시를 열어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자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다. 이즈음 환웅은 웅녀라는 처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우리의 시조인 단군왕검이다. 단군은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으며,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1,500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다. 여기서 우리는 ‘홍익인간’에 주목한다. 이는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며 함께 어우러져 발전해나가자는 최고 선의 푯대인 것이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 하겠다. 즉, ‘홍익인간’은 현대적 효로 이해하는 하모니 HYO 정신의 원리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단군 신화에서는 대립이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서 살기도 한다. 환웅이 세상에 내려 왔을 때, 동방사람들도 환웅의 무리와 전혀 갈등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는 과정은 천상과 지상이 결합하는 천인합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세계관이 담겨 있다 하겠다. 우리의 뿌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조선에서는 8조 금법으로 다스려졌는데, 남아있는 3개 조만을 비춰보아도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로 철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여러 부족 국가들이 생겨났는데, 북쪽에는 부여, 그리고 옥저와 동예를 통일한 고구려가 세워졌으며, 남쪽으로는 마한, 진한, 변한이 일어나고, 이후로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국이 건국되었다. 당시의 건국은 신화로부터 시작되고, 사료가 충분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보여 지는 자료 내에서 효의 정신과 그 이야기를 역사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기로 하자. 환웅과 웅녀 그리고 단군으로 세계를 열었던 우리 조상들은 환인과 환웅으로 이어졌던 세계를 이어갈 상징을 만들어 낸다.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吉鳥)인 “삼족오”이다. 고조선 때부터 ‘태양 숭배’를 하며 자신들은 ‘태양의 자손’, ‘천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늘(태양)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체를 새라고 생각하면서, 태양과 새를 결합하여 태양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삼족오”로 형상화한다.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위대한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원형의 태양 속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다. 또한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에서도 마찬가지로 왕을 상징하는 부장품들 중 삼족오 문양이 들어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삼족오를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태양(太陽)이란 양(陽)의 상징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말하면 남성을 뜻하므로 번영(繁榮)과 풍요(豊饒)를 상징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를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에 반드시 볏이 그려져 있다. 삼족오에 표현된 하나의 볏은 물을 의미하며 이는 즉 태초의 생명성을, 두 개의 날개는 화합, 부부, 상대적 균형, 따뜻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세 발은 자연의 생명성을 보여주는 새싹, 시공, 힘, 완성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한민족의 역사적 정신 속에 살아있는 삼족오는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이다. (유물 속 동물 상징, 한국문화재재단, 윤열수) 천(天)·지(地)·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천지인과 천인합일사상으로 귀결됨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이며, 이는 효의 원리로 근거 삼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천지인이 효의 근거가 됨은 차후 『효경』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8-12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전통적 효, 현대적 효 Ⅱ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전통적 효, 현대적 효 Ⅱ [뉴스인사이트] 우리의 전통적 효는 곧 바로 공자가 주창한 유가의 효를 떠올릴 터인데, 그 유가의 효는 인간관계를 정리한 오륜에 다른 바 없다고 감히 말하겠다. 오륜이란, 부자자효(父慈子孝), 형량제제(兄良弟弟), 부의부청(夫義婦聽), 장혜유순 (長惠幼順), 군인신충(君仁臣忠), 즉, 아버지는 자애하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청종하며, 어른은 베풀며, 어린이는 순응하며, 임금은 인애하고, 신하는 충심을 다한다. 예기(禮記)에서 위의 열 가지를 의(義)라고 설명한다. 이 의(義)는 인(仁)을 모범으로 삼는다. 공자는 인을 모든 일의 근본이라 말한다. 그리고 맹자는 이 의(義)를 사회의 공의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사상은 그 기원이 꽤 멀다. 그리고 그 연원에는 효가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요순시절로 돌아가자. 삼황오제가 나오는 그 요임금과 순임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요는 오제의 하나인 제곡의 손자로 총명하여 재위에 올라 역법 등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효행으로 뛰어난 순으로 하여금 섭정을 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유가의 효는 시작한다. 효행에 뛰어났던 순은 황하를 잘 다스린 우에게 하(夏) 나라 정권을 넘겨주고, 은(殷)나라를 거쳐 주(周)나라에 이르러 유가의 전례가 세워지게 된다. 은나라의 제후였던,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손주 창(昌)이 총명한 모습을 보이자, 제후의 위를 잇게 하고자 그 아버지 계력을 세자로 삼고 싶어 하니, 첫째 태백(太伯)과 둘째가 식솔들을 이끌고 그 나라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창(昌)이 장차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될 수 있게 된다. 사실 창(昌)이 총명하게 된 것은 그 어머니 태임(太妊)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역사상 최초로 태교를 했던 여인이 태임이다. 태임의 훌륭함을 본받고자 신사임당이 태임에서 자호(自號) 하였음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은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는 무왕에 이르러 은나라의 주(紂)임금을 몰아내고 천자국인 주(周)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 무왕은 세계를 제패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어린 아들 성왕(成王)이 위를 잇게 된다. 무왕과 함께 주나라를 세운 주공(周公)은 무왕의 동생으로 조카 성왕(成王)을 보필하며 섭정하였다. 이때 주공이 세운 문물제도에서 오륜을 기본으로 확립하게 된다. 이 같은 역사의 근본 바탕에는 효를 전제로 설명하는 것이 공자의 유가 정치학이다. 즉, 순을 대효라 칭하고, 주공을 달효(達孝)라 칭하여 태평성대의 근본은 효치에 있음을 강조하며, 인(仁)사상을 주창한 것이며, 이를 받은 맹자는 의를 강조하여 인의사상을 가르쳐 온 이래로 지금까지 효의 정신이 명맥을 이어 온 것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유가의 사상이 아직 유효한 곳도 있지만, 대체로 봉건적 구습으로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며, 효 정신 역시 함께 용도 폐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효는 우리에게 뿌리 깊게 현대 사회에 전통으로 이어 와, 다시금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현대적 효’라는 말에 붙이는 설명이 있다. 이름 하여 HYO! 그대로 읽으면 효이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Harmony of Young and Old 즉, “젊은 세대와 연로한 세대의 조화” 이를 효의 맥락으로 이해하기로 약속하였다. 자녀가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 글자의 의미 그대로 효(孝)라고 한다면, HYO는 부모자녀 및 가족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 그리고 그를 에워싼 환경, 나아가 전 지구적 형제애를 보듬는 것이 효인 것이다. 이는 성산효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신 최성규 총장께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시 생환한 젊은 세 청년이 효자였다는 점에서 효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이를 사회와 인류에 적용시킬 방안을 제안한 이후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과거의 전통은 군사부(君師父)라 일컬었었다. 현대사회는 군주국가가 아니니, 임금 대신 어른이 마땅한 용어일 듯싶다. 부모·어른·스승 공경을 행함이 가장 기초가 되며, 중요한 효일 것이다. 사실 효를 받는 부모·어른·스승은 어린이·청소년·제자를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호하였다. 이를 너무 당연시하다보니, 이에 대한 관심은 약해졌다 할 수 있다. 관심을 기울이면 더욱 잘 실천할 수 있기에, 현대의 효에서는 이를 강조한다. 다음으로 가족을 사랑함과 나라를 사랑하는 효로 확장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의 의식 수준에 따라 쉽게 동의 되기도 하고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을 생각하는 의식 단계가 있고 수준이 깊어지면 ‘우리’라는 의식으로 성장하며, 더욱 성장하면 ‘우리모두’라는 수준까지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자연과 환경을 살피며, 인류로까지 그 사랑의 정도를 넓힐 수 있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모쪼록 현대적 효란 이처럼 이웃사랑과 인류봉사에 목표를 두는 박애의 실천을 효라 정의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인 환경보존과 국제구호 할동이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할 수 있겠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계속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6-21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始之也)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始之也) 효를 정의할 때, 신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 ‘불감훼상’과 ‘입신양명’을 말한다. 이는『효경』에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이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요, 입신행도(立身行道)하고 양명어후세(揚名於後世)하여, 이현부모(以顯父母)함이 효지종야(孝之終也)”에서 연유한다. 효에 대한 첫 번째 정의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다. 무엇을 섬기는가에 따라 효의 내용이 다채롭고 어려워진다. 부모의 육신을 섬기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거나, 그 말씀에 순종하여 부모님의 뜻을 이어 마침내 이루어드림으로써, 기쁨을 드리는 일까지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효행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 스스로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건강, 정신의 건강까지다. 즉, 수신(修身)이다. 첫째, 자신의 신체가 건강한 것이 효의 첫발임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늘 몸이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다면, 부모에게 효하는 것은 고사하고 걱정을 끼치게 될 테니 말이다. 신체의 건강은 맹자가 말한 다섯 가지 불효에 호용투흔(好勇鬪很), 이위부모(以危父母), 즉, 용맹이 있어 다투기를 좋아해서 부모에게 위험을 끼친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건강하다면, 친구들과 함부로 다툴 일도, 다툼으로 상해를 입을 일도 없게 된다. 둘째, 바른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가꾸어나가는 삶에 열심을 내야한다. ‘나’의 삶에 대한 목표나 소망은 바른 마음과 곧은 정신에서 희망적인 목표와 소망이 생긴다. 그럼으로써 능력에 걸맞는 학업과 업무 등을 이뤄낸다면, 부모, 형제, 가족과의 행복은 물론, 학교, 직장 등의 사회 활동에 행복과 기여가 가능한 일이기에 그렇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라고 하자. 만약, 바른 마음 곧은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돈에 목표가 있게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는데, 그 잘못된 수단과 방법으로 아니함 만 못한 결과를 내어 비참한 종지부를 찍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또, 내 자존감이 매우 낮아 늘상 주눅 들어 살아간다면, 형제와 부모 사이에서는 물론, 학교나 사회생활이 즐거울 리 없으니, 이 또한 부모에게 측은한 마음을 주게 된다. 이는 불효다. 부모 형제의 걱정거리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셋째, 제 욕심만 우선하여 멋대로 행동하여 주변에 끼치는 피해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이 역시 나를 포함한 가족에게 욕을 먹이는 처사인 것이다. 소위 공중도덕이라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무례한, 사회에서 승진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무도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재물을 빼앗는 무뢰한의 행동들이야말로 내 속에 자리 잡지 않도록 날마다 다스리고 가꾸는 수신(修身)의 살을 살도록 부모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노력해야할 것이다. 바른 마음과 곧은 정신으로 내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여 누구에게라도 내세울만한 결과를 얻는다면, 이는 내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으며, 이는 당연히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는 양명(揚名)의 효(孝)가 실천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5-24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전통적 ‘효’, 현대적 ‘효’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전통적 ‘효’, 현대적 ‘효’ ‘전통’이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종종 전통을 단지 ‘옛것’이라고 오해하며 구태의연하다고 한다. 그러하니 ‘전통적’ ‘현대적’ 이라고 구분하는 것 아닐까? 엄밀히 말하자면 옛적에 있었던 일들이 그 시대를 지나면서 더하여지고 빼지는 과정을 거쳐 후대로 전해져 온 것들을 ‘전통’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적’이라 함은 “바로 앞 시대에까지 그렇게 전해진 것을 지금 우리는 이런 생각을 지니고 이해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효’는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전통적 개념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 효 이야기를 현대시대에서 거듭 꺼내면 구태의연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어버이날, 가정의 달을 지낼 때면, ‘효’ 이야기가 자연스레 우리 곁에 다가 온다. 이때의 효는 부모에게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효이다. 우리는 이를 보은이라 한다. 자녀의 보은은 크게 두 가지로 살필 수 있다. 먼저는 보은 보다는 당연한 자녀의 도리이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과 부모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이다. 그 보은의 방법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기쁨으로 돌려드리는 순종과 감사이다. 다음은 성장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의 필요에 보답하는 보은으로 우리가 말하는 ‘효도’라 하겠다. 사실, 효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 없다. 효는 그대로의 효일뿐이다.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고, 나의 신체를 강건하게 하며, 부모님의 이름을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해드리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보은은 부모의 지원에 대한 보답이다. 따라서 자녀의 보은은 적어도 부모로부터 입은 은혜만큼의 보은을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교환이론에 따른 “받은 만큼은 반드시 보은해야한다”거나, “적어도 무엇만큼”은 이라는 등의 균형적 보은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혹은 지원받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증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자녀는 부모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에 상응하는 보은을 무엇으로 설정할 수 있을까? 첫 구절부터 이야기의 구성이 불편함으로 이는 제외하기로 한다. 둘째, 영아시절 부모의 손길 없이는 한시도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에 공자는“재아가 밖으로 나가자, ‘재아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3년의 상은 천하의 공통된 상례이니, 재아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 부모가 3년은 돌보며 키워줬을 것이니, 이에 대한 보답으로 돌아가시면 3년 상은 지내야 마땅한 일이라면서, 이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제자 재아를 나무라는 장면이다. 부모가 길러주신 보은에 대하여 3년 상은 지내야 그에 대한 보은이라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럴지라도 현대적 환경에서 이를 지키는 것은 여의치 않다. 아울러 공자의 평가대로 3년 상을 지키지 않는 경우를 인하지 못하다고 할 수 만도 없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을 생각하며 각자의 보은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이다. 셋째, 유아시절부터 아동 및 청소년기까지 부모의 돌봄은 가정사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물질적, 정신적 지원은 계량화하기 쉽지 않다. 종종 여러 연구에서 한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재정적 계수가 발표되기도 하지만, 부모 개개인의 정서적 지원에 관한 계수는 여하한 경우라도 인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를 균형적 보은이라는 상상은 불가능하다. 이에 상응하는 보은을 생각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기에 효행을 강조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 듯싶다. 이에 대한 보은 감사는 해당 시기의 일상생활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감사하는 언행으로 상호 교호하는 관계의 효행을 하도록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지원은 지속된다. 혹, 물질적 지원은 자녀가 더 부유해질 수 있으나, 여전히 부모는 그 자녀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녀의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자식의 보은은 그 은혜에 닿을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만고의 진리일 게다. 그럴지라도 자녀는 부모에 대한 보은의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효라 불러온 것들 중 첫 발자국을 떼는 과정일 따름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5-10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를 만나고 보니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를 만나고 보니 효의 사전적 의미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다.” 이는 한나라의 허신이『설문해자』라는 자전류에서 해설한 의미로 우리의 국어사전에서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효(孝), 효도(孝道)에 대하여 ‘부모를 섬기다’, ‘효도하다’, ‘맏, 맏자식’, ‘본받다’ 이외에 ‘상복(喪服), 상복(喪服)을 입다’,‘거상(居喪)하다’, ‘제사지내다’로 풀이한다. 언어는 행위가 드러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효는 글자에서 보이기 전부터 있어 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역사에 드러난 효행 이전에 이미 효는 있어왔다는 논리를 펴고 싶은 까닭이다. 전적에 드러난 효의 이야기는 B.C. 1,100년에서 600년대의 주나라 금석문을 비롯하여 『상서』와 『시경』등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로부터 시작된 효의 이야기는 통치 기술의 하나로 쓰이기도 하고, 민간에 인간의 사랑과 협력을 가르치는 인성교육예법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효에 관한 이야기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인권을 무시하고 가부장적이며, 봉건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현대는 과학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유주의, 개방화된 근대에 이 무슨 해괴한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냐고 외치면서 말이다. 혹 이렇게 생각하시는 독자를 위하여 이제부터 제가 만난 효의 본질적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효의 실상은 문서로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확인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라샤펠오생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연구한 결과 노령으로 관절염을 앓고, 어금니가 빠진 상태로 오랫동안 살았던 노인의 화석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1950년대 이라크의 샤니다르 유적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역시 젊어서 크게 다쳤고, 누군가의 보호아래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터키북동쪽 조지아의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 역시 노인이 빙하기 전에 이가 다 빠진 상태로 살아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무려 1백8십만 년 전의 화석이야기다. 네안데르탈인 이야기다. 현생 인류도 우리의 이야기도 아닌데, 무슨 뜬끔 없는 이야기냐고 힐난할 수 도 있겠다. 효는 이런 배경에서 당연하게 우리의 정서로 드러난 것이지 인위적이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된 이데올로기적 비판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이거나 강요에 의한 효가 아니라 인류의 시초부터 자연스레이 행하여지던 이타적 행동이 효의 근원이요. 이를 통한 사회 구성의 원리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구체적 문헌적 사례로 『구약성경』「출애굽기」에 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소개한다. 이는 군집생활을 하던 시기에 대단위 군중의 합심을 위하여 효행의 원리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는 문헌이다. 또한, AD 62년경 쓰여 진 디모데전서 5장 4절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를 보더라도 효의 유용성을 알 수 있으며, 이 사건을 통하여 효의 장구함이 얼마나 긴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가(儒家)에서 효의 이점을 정치사상의 배경으로 제공해 온 것과 달리 인간사회에서 협력하고 사랑하도록 하는 해법이 효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유가의 정치사상으로 인하여 효의 가치는 우리의 반만년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오며, 지탄과 찬사를 동시에 받아왔다. 이제는 이러한 지탄과 찬사의 논란 대상이 효(孝)가 되기보다는 효(孝)로 함께하는 사회의 지렛대로 사용하자는 생각이 효에 대하여 들여다 볼수록 느끼게 되는 매력을 소개하고 싶다. 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신체를 잘 살피고 성공적 삶을 통해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만 실천하여도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부해지겠는가? 게다가 “부모의 뜻을 따르고, 사람의 일을 잘 계승하는 일”이 효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실천한다면, 나와 우리 가족은 정말 멋진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겠는가? 바로 이런 것들을 완성해나가는 것이 효일진대, 이 효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을까 싶다. 앞으로 이러한 매력에 함께 빠져들기를 제안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4-29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에 대한 단상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의 '효' 이야기 효에 대한 단상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효’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 그다지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여 지거나, 삶을 규제하는 형식으로 느껴지기에 효 이야기는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는 자유민주주의 위에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사회인 반면, 효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라는 위계질서의 고정 관념에서 출발하기에 이 둘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효는 아주 오래 전 옛 서책에서나 눈 씻고 봄직한 도덕 이야기 혹은 사상과 행동을 제약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그리고 동화의 소재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인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효는 역사시대 이전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고대의 종법(宗法)사회의 윤리도덕의 기초에서 그 기본 틀을 갖추었다. 유목문화에서 농경문화로 정착되어가는 과정 중 효 문화가 본격적으로 싹을 틔웠을 것이다. 가족이 생산단위이고, 가장이 그 가족의 중심이 되며, 가족 단위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효의 중요성이 강화되었을 터이니 말이다. 농경문화가 주를 이루던 전(前)근대,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며 과학적 분석이 세상의 잣대가 되었던 근대, 그리고 분절적으로 보았던 것들을 다시 통합적으로 다루는 탈(脫)근대라는 패러다임과 유목생활, 농경문화, 산업화, 정보화 등 생산 양식의 변화와 정치적 행보에 따라 효에 대한 제도와 인식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효의 그 중심 골격은 면면히 이어져왔다. 특히, 종교와 문화 등 각각의 세계관에 따라 그 정의가 다의적이고, 그 내용도 다양하게 발전되어왔다. 마침내, 최성규 목사(성산효대학원대학교 설립자)께서는 효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하모니라는 의미 즉, HYO(Harmony of Young and Old)라고 정립하여 효를 친근한 보편적 용어로 제시하였다.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라는 것이 가장 사전적인 정의이다. 다음으로 “부모의 뜻을 따르고, 사람의 일을 잘 계승하는 일”.을 효라 한다. 또“자신의 신체를 잘 살피고 성공적 삶을 통해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부모, 어른, 스승, 그리고 형제 및가족이라는 대상자들 사이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을 효행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다. 물론,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태어났지만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부모께서 길러주신 은혜는 잊은 채, 본인 홀로 스스로 성장한 것으로 착각한다. 아니다. 사실 부모님이 길러주신 것을 왜 모르겠는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부모의 수고와 노력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중에도 많은 사람은 부모님이 연로하시면 때때로 보살펴 드리기도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도덕적 의무감이 내게서 소홀해지는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마침내 연로하신 부모가 귀찮아지고, 내게 짐이 되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버거워진다. 한편, 효를 잘 실천하는 사람들도 부모와 자녀 간, 혹은 부모와 다른 형제간에 오해나 서운함이 생길 수 있으며, 심하면 다툼까지 생기는 일도 종종 보았다. 그리고 효는 부모님을 잘 섬기는 일 이외에도 자신의 몸을 잘 돌보고 자신을 존중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 부모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등의 중요한 여타의 효행이 있을 수 있으며, 효를 가족 내에서 책임져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복지제도에서 다룰 문제인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복지국가로 진입하며 효는 더욱 설자리를 잃어 가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사회의 각 부분 곳곳에서 효를 이야기한다. 특히 복지 분야가 그렇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효를 하자는 것이라기보다 노부모 부양의 책임을 가족 이외에서 찾아보자는 논의가 더 많아 보인다. 복지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은 노년의 마지막 때, 삶이 버거운 사람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국가 복지예산으로 모든 노년 인구를 감당하는 것에는 누구나 우려를 하지만, 보편성과 공정성으로 인해 집행부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일을 추진할 수 밖 에 없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개개인의 노후는 최대한 스스로 책임진다. 국가는 그 중 취약한 사람부터 선별적으로 보호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훌륭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그 국민적 합의 이전에 반만년을 이어 온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인 효정신과 실천을 돌이켜 봄이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부모는 자녀를 낳았고, 자녀는 부모의 손에 길러져 성장하였으며, 그 부모가 이제 늙어 약해질 때 쯤, 자녀는 사회의 간성이 된다. 성장한 자녀는 쇠약해진 노부모를 섬겨야 함이 마땅한 도리이다. 즉, 가족 내에서 노부모를 섬긴다면, 노년세대의 복지를 위한 국가의 소모적 행정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모를 섬길 수 없을 정도의 경제가 곤란한 사람과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가족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이는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처럼 부모 부양이 어려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국가에서 이와 관련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면, 부모를 봉양하는 자녀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세제혜택으로 인한 감세는 오히려 복지예산을 더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며, 부모를 섬기는 자녀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제혜택의 도움을 얼마나 체감하는 가의 문제가 따르겠지만, 아울러 부모를 섬기는 자녀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HYO, 즉 Harmony of Young and Old, 효의 실천이라고 한다. 박 희 원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4-15

실시간 효 이야기 기사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경」, 「삼재장」을 통한 효의 이해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경」, 「삼재장」을 통한 효의 이해 「효경」은 특별한 경전이다. 유가의 경전은 시, 서, 예, 악, 역으로 불리다가,『시경』만이 당대에 이르러『경』이 붙었고, 다른 경서는 송대에 이르러서야 십삼경이 확정되면서 경이 붙여진 반면,『효경』은 쓰여 진 당시부터 『효경』이었다. 『효경』이 『효경』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공자가 말한 것을 제자 증삼이 기록하였다는 전제로 처음부터 공자의 권위를 담기 위한 큰 그림일 수 있고, 둘째, 본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를 골라 책명으로 삼은 것이다. 「삼재장」에서 “효란,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질서이며, 사람의 행실이라(夫孝 天之經, 地之義(誼), 民之行也) 라는 중에 夫孝(부효)의 ‘효’자와 天之經(천지경)에서 ‘경’자를 취하여 명명한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세 가지 즉, 천, 지, 인 삼재(三才)는 인류 문명이 발전해 나가는데 필요한 요소로써,『주역』「계사전」에서 비롯하였다.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운행하면서 발전을 주재하는 천(天), 하늘이라 하는데, 그 절대적 도리, 하늘의 법칙, 천지경(天之經) 즉, 천도라 하고,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 만물은 땅을 기반으로 생육하고 번식하며 성장·발전하는 정황을 지지의(地之義), 즉 지덕(地德)라 한 것이다. 이를 합하여 천지지경(天地之經)이라 한다. 그리고 생성 변화하는 만물 중, 사람만이 우주천지와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여 그 도리를 터득하고 활용할 줄 앎을 피력한 것이다. 하늘은 왜 사람을 만물 중 으뜸으로 삼았을까? 『서경(書經)』에 “하늘의 일을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한다(天工人其代之也)”는 이야기로 설명에 갈음한다. 천지지경의 이야기는『성경』「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천지지경의 의미에 힘을 보태준다. 또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지지리(地之利)를 “원기(元氣)가 나뉘어 가볍고 맑은 양기(陽氣)는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음기(陰氣)는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라 하였는데, 이 역시 성경의 이야기와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주역(周易)』「태괘(泰卦) 상전(象傳)」에서 “하늘은 위에 있지만 그 기는 내려와 땅의 기와 섞이며, 땅의 기는 아래에 있지만, 그 기는 올라가 하늘의 기와 섞인다. 천지의 기가 섞여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군주는 이 태괘의 상을 본떠 천지자연의 도를 알맞게 하고, 또 봄에는 싹트고 가을에는 열매 맺으며, 수수는 높은 지대에서, 벼는 낮은 지대에서 잘자란다는 등의 천지자연의 적절함에 따라 봄에는 씨 뿌리고 가을에는 수확하며, 높은 곳에는 수수를 심고 낮은 곳에는 벼를 심어 천지자연의 적절함을 알맞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을 도와 다스린다” 하였다. 이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리이다. 여기에서 천지는 다시 부모라고 하는 설명을 본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오해가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남자, 어머니는 여자,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그래서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고 하는 식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 들었던 그런 식의 해석을 부질없이 되 뇌여 본다. 다시 돌아가서, 아버지는 하늘과 같이 법칙과 원칙을 세우고 지켜가는 역할, 어머니는 땅의 질서와 같은 길러냄의 본분을 지켜 자녀를 생육하고, 살림을 일으키는 고귀한 역할을 우주의 질서에 견주어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삼재장인 것이다. 효는 사람의 행위이지만, 천(天)과 지(地)의 원리와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일 터인 즉, 하늘의 원리를 기준삼고, 땅의 질서를 따라 세상을 살되 사람의 행실은 효가 기준이 된다면, 정사를 비롯한 모든 일이 원만해진다는 논리이다. 천도(天道)는 광명정대, 공평무사, 영구불변하지만, 형이상의 진리로 보이지 않는다. 그 도는 덕(德)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그 가운데에 사람이 존재하게 된다. 사람이 깨닫고 실천하는 민지행(民之行)을 통하여 이 땅에 덕이 펼쳐진다. 즉 지덕(地德)이라 하는데, 덕(德)은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설명된다. 한편 주희는 천지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를 낳아 새로운 존재에게 생명을 베풀어주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천지에는 덕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덕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인’이라하였다. 나아가 천지로부터 태어난 만물은 천지의 자식이니만큼, 천지의 ‘인’을 물려받아 자신의 본질로 삼아 태어나기에 만물의 본성은 ‘인’이 된다. 정리하자면, 사람은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천도로부터 깨닫고, 성실한 인행으로 지덕을 세움으로써, 이 땅을 진선미의 문화와 도덕의 세계를 만들어야하는 당위성의 대 전제가 삼재(三才)라 할 수 있겠다.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의 도리가 인의예지와 원형이정에 따라 완성됨이 삼재장에서 추구하는 효의 이야기임을 살펴보았다. 옛적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 주는 사람을 왕(王)이라 설명하였는데, 현대는 모든 사람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가는 왕의 역할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임을 삼재장의 효라 말하고 싶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9-14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제정일치 시대로 부터 고대 왕조에 비친 효Ⅰ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제정일치 시대로 부터 고대 왕조에 비친 효Ⅰ [뉴스인사이트] 요임금이 자신의 아들들을 제치고 순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며 양위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순이 효성스러웠다는 점이다. 그 효성을 대효(大孝)라 부르는데, 단순히 부모에게 효성스러움만이 아닌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릴 능력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단군신화가 있었다. 환웅이 삼위태백(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풍백, 우사, 운사)과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환웅이 무리들과 하늘나라에서 내려올 때, 동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 보았고, 환웅은 동방 사람들을 향해 “내가 하느님의 명에 따라 그대들을 다스리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환웅에게 절했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였으며, 삼위태백과 부하들에게 360여 가지 인간 세상의 일을 나눠 맡겼다. 환웅이 신시를 열어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자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다. 이즈음 환웅은 웅녀라는 처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우리의 시조인 단군왕검이다. 단군은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으며,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1,500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다. 여기서 우리는 ‘홍익인간’에 주목한다. 이는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며 함께 어우러져 발전해나가자는 최고 선의 푯대인 것이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 하겠다. 즉, ‘홍익인간’은 현대적 효로 이해하는 하모니 HYO 정신의 원리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단군 신화에서는 대립이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서 살기도 한다. 환웅이 세상에 내려 왔을 때, 동방사람들도 환웅의 무리와 전혀 갈등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는 과정은 천상과 지상이 결합하는 천인합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세계관이 담겨 있다 하겠다. 우리의 뿌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조선에서는 8조 금법으로 다스려졌는데, 남아있는 3개 조만을 비춰보아도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로 철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여러 부족 국가들이 생겨났는데, 북쪽에는 부여, 그리고 옥저와 동예를 통일한 고구려가 세워졌으며, 남쪽으로는 마한, 진한, 변한이 일어나고, 이후로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국이 건국되었다. 당시의 건국은 신화로부터 시작되고, 사료가 충분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보여 지는 자료 내에서 효의 정신과 그 이야기를 역사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기로 하자. 환웅과 웅녀 그리고 단군으로 세계를 열었던 우리 조상들은 환인과 환웅으로 이어졌던 세계를 이어갈 상징을 만들어 낸다.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吉鳥)인 “삼족오”이다. 고조선 때부터 ‘태양 숭배’를 하며 자신들은 ‘태양의 자손’, ‘천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늘(태양)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체를 새라고 생각하면서, 태양과 새를 결합하여 태양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삼족오”로 형상화한다.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위대한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원형의 태양 속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다. 또한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에서도 마찬가지로 왕을 상징하는 부장품들 중 삼족오 문양이 들어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삼족오를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태양(太陽)이란 양(陽)의 상징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말하면 남성을 뜻하므로 번영(繁榮)과 풍요(豊饒)를 상징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를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에 반드시 볏이 그려져 있다. 삼족오에 표현된 하나의 볏은 물을 의미하며 이는 즉 태초의 생명성을, 두 개의 날개는 화합, 부부, 상대적 균형, 따뜻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세 발은 자연의 생명성을 보여주는 새싹, 시공, 힘, 완성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한민족의 역사적 정신 속에 살아있는 삼족오는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이다. (유물 속 동물 상징, 한국문화재재단, 윤열수) 천(天)·지(地)·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천지인과 천인합일사상으로 귀결됨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이며, 이는 효의 원리로 근거 삼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천지인이 효의 근거가 됨은 차후 『효경』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8-12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전통적 효, 현대적 효 Ⅱ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전통적 효, 현대적 효 Ⅱ [뉴스인사이트] 우리의 전통적 효는 곧 바로 공자가 주창한 유가의 효를 떠올릴 터인데, 그 유가의 효는 인간관계를 정리한 오륜에 다른 바 없다고 감히 말하겠다. 오륜이란, 부자자효(父慈子孝), 형량제제(兄良弟弟), 부의부청(夫義婦聽), 장혜유순 (長惠幼順), 군인신충(君仁臣忠), 즉, 아버지는 자애하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청종하며, 어른은 베풀며, 어린이는 순응하며, 임금은 인애하고, 신하는 충심을 다한다. 예기(禮記)에서 위의 열 가지를 의(義)라고 설명한다. 이 의(義)는 인(仁)을 모범으로 삼는다. 공자는 인을 모든 일의 근본이라 말한다. 그리고 맹자는 이 의(義)를 사회의 공의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사상은 그 기원이 꽤 멀다. 그리고 그 연원에는 효가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요순시절로 돌아가자. 삼황오제가 나오는 그 요임금과 순임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요는 오제의 하나인 제곡의 손자로 총명하여 재위에 올라 역법 등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효행으로 뛰어난 순으로 하여금 섭정을 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유가의 효는 시작한다. 효행에 뛰어났던 순은 황하를 잘 다스린 우에게 하(夏) 나라 정권을 넘겨주고, 은(殷)나라를 거쳐 주(周)나라에 이르러 유가의 전례가 세워지게 된다. 은나라의 제후였던,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손주 창(昌)이 총명한 모습을 보이자, 제후의 위를 잇게 하고자 그 아버지 계력을 세자로 삼고 싶어 하니, 첫째 태백(太伯)과 둘째가 식솔들을 이끌고 그 나라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창(昌)이 장차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될 수 있게 된다. 사실 창(昌)이 총명하게 된 것은 그 어머니 태임(太妊)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역사상 최초로 태교를 했던 여인이 태임이다. 태임의 훌륭함을 본받고자 신사임당이 태임에서 자호(自號) 하였음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은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는 무왕에 이르러 은나라의 주(紂)임금을 몰아내고 천자국인 주(周)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 무왕은 세계를 제패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어린 아들 성왕(成王)이 위를 잇게 된다. 무왕과 함께 주나라를 세운 주공(周公)은 무왕의 동생으로 조카 성왕(成王)을 보필하며 섭정하였다. 이때 주공이 세운 문물제도에서 오륜을 기본으로 확립하게 된다. 이 같은 역사의 근본 바탕에는 효를 전제로 설명하는 것이 공자의 유가 정치학이다. 즉, 순을 대효라 칭하고, 주공을 달효(達孝)라 칭하여 태평성대의 근본은 효치에 있음을 강조하며, 인(仁)사상을 주창한 것이며, 이를 받은 맹자는 의를 강조하여 인의사상을 가르쳐 온 이래로 지금까지 효의 정신이 명맥을 이어 온 것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유가의 사상이 아직 유효한 곳도 있지만, 대체로 봉건적 구습으로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며, 효 정신 역시 함께 용도 폐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효는 우리에게 뿌리 깊게 현대 사회에 전통으로 이어 와, 다시금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현대적 효’라는 말에 붙이는 설명이 있다. 이름 하여 HYO! 그대로 읽으면 효이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Harmony of Young and Old 즉, “젊은 세대와 연로한 세대의 조화” 이를 효의 맥락으로 이해하기로 약속하였다. 자녀가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 글자의 의미 그대로 효(孝)라고 한다면, HYO는 부모자녀 및 가족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 그리고 그를 에워싼 환경, 나아가 전 지구적 형제애를 보듬는 것이 효인 것이다. 이는 성산효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신 최성규 총장께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시 생환한 젊은 세 청년이 효자였다는 점에서 효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이를 사회와 인류에 적용시킬 방안을 제안한 이후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과거의 전통은 군사부(君師父)라 일컬었었다. 현대사회는 군주국가가 아니니, 임금 대신 어른이 마땅한 용어일 듯싶다. 부모·어른·스승 공경을 행함이 가장 기초가 되며, 중요한 효일 것이다. 사실 효를 받는 부모·어른·스승은 어린이·청소년·제자를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호하였다. 이를 너무 당연시하다보니, 이에 대한 관심은 약해졌다 할 수 있다. 관심을 기울이면 더욱 잘 실천할 수 있기에, 현대의 효에서는 이를 강조한다. 다음으로 가족을 사랑함과 나라를 사랑하는 효로 확장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의 의식 수준에 따라 쉽게 동의 되기도 하고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을 생각하는 의식 단계가 있고 수준이 깊어지면 ‘우리’라는 의식으로 성장하며, 더욱 성장하면 ‘우리모두’라는 수준까지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자연과 환경을 살피며, 인류로까지 그 사랑의 정도를 넓힐 수 있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모쪼록 현대적 효란 이처럼 이웃사랑과 인류봉사에 목표를 두는 박애의 실천을 효라 정의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인 환경보존과 국제구호 할동이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할 수 있겠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계속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6-21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始之也)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始之也) 효를 정의할 때, 신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 ‘불감훼상’과 ‘입신양명’을 말한다. 이는『효경』에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이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요, 입신행도(立身行道)하고 양명어후세(揚名於後世)하여, 이현부모(以顯父母)함이 효지종야(孝之終也)”에서 연유한다. 효에 대한 첫 번째 정의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다. 무엇을 섬기는가에 따라 효의 내용이 다채롭고 어려워진다. 부모의 육신을 섬기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거나, 그 말씀에 순종하여 부모님의 뜻을 이어 마침내 이루어드림으로써, 기쁨을 드리는 일까지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효행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 스스로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건강, 정신의 건강까지다. 즉, 수신(修身)이다. 첫째, 자신의 신체가 건강한 것이 효의 첫발임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늘 몸이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다면, 부모에게 효하는 것은 고사하고 걱정을 끼치게 될 테니 말이다. 신체의 건강은 맹자가 말한 다섯 가지 불효에 호용투흔(好勇鬪很), 이위부모(以危父母), 즉, 용맹이 있어 다투기를 좋아해서 부모에게 위험을 끼친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건강하다면, 친구들과 함부로 다툴 일도, 다툼으로 상해를 입을 일도 없게 된다. 둘째, 바른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가꾸어나가는 삶에 열심을 내야한다. ‘나’의 삶에 대한 목표나 소망은 바른 마음과 곧은 정신에서 희망적인 목표와 소망이 생긴다. 그럼으로써 능력에 걸맞는 학업과 업무 등을 이뤄낸다면, 부모, 형제, 가족과의 행복은 물론, 학교, 직장 등의 사회 활동에 행복과 기여가 가능한 일이기에 그렇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라고 하자. 만약, 바른 마음 곧은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돈에 목표가 있게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는데, 그 잘못된 수단과 방법으로 아니함 만 못한 결과를 내어 비참한 종지부를 찍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또, 내 자존감이 매우 낮아 늘상 주눅 들어 살아간다면, 형제와 부모 사이에서는 물론, 학교나 사회생활이 즐거울 리 없으니, 이 또한 부모에게 측은한 마음을 주게 된다. 이는 불효다. 부모 형제의 걱정거리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셋째, 제 욕심만 우선하여 멋대로 행동하여 주변에 끼치는 피해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이 역시 나를 포함한 가족에게 욕을 먹이는 처사인 것이다. 소위 공중도덕이라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무례한, 사회에서 승진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무도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재물을 빼앗는 무뢰한의 행동들이야말로 내 속에 자리 잡지 않도록 날마다 다스리고 가꾸는 수신(修身)의 살을 살도록 부모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노력해야할 것이다. 바른 마음과 곧은 정신으로 내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여 누구에게라도 내세울만한 결과를 얻는다면, 이는 내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으며, 이는 당연히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는 양명(揚名)의 효(孝)가 실천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5-24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전통적 ‘효’, 현대적 ‘효’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전통적 ‘효’, 현대적 ‘효’ ‘전통’이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종종 전통을 단지 ‘옛것’이라고 오해하며 구태의연하다고 한다. 그러하니 ‘전통적’ ‘현대적’ 이라고 구분하는 것 아닐까? 엄밀히 말하자면 옛적에 있었던 일들이 그 시대를 지나면서 더하여지고 빼지는 과정을 거쳐 후대로 전해져 온 것들을 ‘전통’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적’이라 함은 “바로 앞 시대에까지 그렇게 전해진 것을 지금 우리는 이런 생각을 지니고 이해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효’는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전통적 개념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 효 이야기를 현대시대에서 거듭 꺼내면 구태의연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어버이날, 가정의 달을 지낼 때면, ‘효’ 이야기가 자연스레 우리 곁에 다가 온다. 이때의 효는 부모에게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효이다. 우리는 이를 보은이라 한다. 자녀의 보은은 크게 두 가지로 살필 수 있다. 먼저는 보은 보다는 당연한 자녀의 도리이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과 부모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이다. 그 보은의 방법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기쁨으로 돌려드리는 순종과 감사이다. 다음은 성장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의 필요에 보답하는 보은으로 우리가 말하는 ‘효도’라 하겠다. 사실, 효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 없다. 효는 그대로의 효일뿐이다.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고, 나의 신체를 강건하게 하며, 부모님의 이름을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해드리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보은은 부모의 지원에 대한 보답이다. 따라서 자녀의 보은은 적어도 부모로부터 입은 은혜만큼의 보은을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교환이론에 따른 “받은 만큼은 반드시 보은해야한다”거나, “적어도 무엇만큼”은 이라는 등의 균형적 보은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혹은 지원받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증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자녀는 부모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에 상응하는 보은을 무엇으로 설정할 수 있을까? 첫 구절부터 이야기의 구성이 불편함으로 이는 제외하기로 한다. 둘째, 영아시절 부모의 손길 없이는 한시도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에 공자는“재아가 밖으로 나가자, ‘재아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3년의 상은 천하의 공통된 상례이니, 재아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 부모가 3년은 돌보며 키워줬을 것이니, 이에 대한 보답으로 돌아가시면 3년 상은 지내야 마땅한 일이라면서, 이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제자 재아를 나무라는 장면이다. 부모가 길러주신 보은에 대하여 3년 상은 지내야 그에 대한 보은이라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럴지라도 현대적 환경에서 이를 지키는 것은 여의치 않다. 아울러 공자의 평가대로 3년 상을 지키지 않는 경우를 인하지 못하다고 할 수 만도 없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을 생각하며 각자의 보은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이다. 셋째, 유아시절부터 아동 및 청소년기까지 부모의 돌봄은 가정사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물질적, 정신적 지원은 계량화하기 쉽지 않다. 종종 여러 연구에서 한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재정적 계수가 발표되기도 하지만, 부모 개개인의 정서적 지원에 관한 계수는 여하한 경우라도 인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를 균형적 보은이라는 상상은 불가능하다. 이에 상응하는 보은을 생각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기에 효행을 강조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 듯싶다. 이에 대한 보은 감사는 해당 시기의 일상생활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감사하는 언행으로 상호 교호하는 관계의 효행을 하도록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지원은 지속된다. 혹, 물질적 지원은 자녀가 더 부유해질 수 있으나, 여전히 부모는 그 자녀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녀의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자식의 보은은 그 은혜에 닿을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만고의 진리일 게다. 그럴지라도 자녀는 부모에 대한 보은의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효라 불러온 것들 중 첫 발자국을 떼는 과정일 따름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5-10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를 만나고 보니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를 만나고 보니 효의 사전적 의미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다.” 이는 한나라의 허신이『설문해자』라는 자전류에서 해설한 의미로 우리의 국어사전에서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효(孝), 효도(孝道)에 대하여 ‘부모를 섬기다’, ‘효도하다’, ‘맏, 맏자식’, ‘본받다’ 이외에 ‘상복(喪服), 상복(喪服)을 입다’,‘거상(居喪)하다’, ‘제사지내다’로 풀이한다. 언어는 행위가 드러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효는 글자에서 보이기 전부터 있어 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역사에 드러난 효행 이전에 이미 효는 있어왔다는 논리를 펴고 싶은 까닭이다. 전적에 드러난 효의 이야기는 B.C. 1,100년에서 600년대의 주나라 금석문을 비롯하여 『상서』와 『시경』등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로부터 시작된 효의 이야기는 통치 기술의 하나로 쓰이기도 하고, 민간에 인간의 사랑과 협력을 가르치는 인성교육예법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효에 관한 이야기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인권을 무시하고 가부장적이며, 봉건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현대는 과학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유주의, 개방화된 근대에 이 무슨 해괴한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냐고 외치면서 말이다. 혹 이렇게 생각하시는 독자를 위하여 이제부터 제가 만난 효의 본질적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효의 실상은 문서로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확인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라샤펠오생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연구한 결과 노령으로 관절염을 앓고, 어금니가 빠진 상태로 오랫동안 살았던 노인의 화석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1950년대 이라크의 샤니다르 유적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역시 젊어서 크게 다쳤고, 누군가의 보호아래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터키북동쪽 조지아의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 역시 노인이 빙하기 전에 이가 다 빠진 상태로 살아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무려 1백8십만 년 전의 화석이야기다. 네안데르탈인 이야기다. 현생 인류도 우리의 이야기도 아닌데, 무슨 뜬끔 없는 이야기냐고 힐난할 수 도 있겠다. 효는 이런 배경에서 당연하게 우리의 정서로 드러난 것이지 인위적이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된 이데올로기적 비판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이거나 강요에 의한 효가 아니라 인류의 시초부터 자연스레이 행하여지던 이타적 행동이 효의 근원이요. 이를 통한 사회 구성의 원리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구체적 문헌적 사례로 『구약성경』「출애굽기」에 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소개한다. 이는 군집생활을 하던 시기에 대단위 군중의 합심을 위하여 효행의 원리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는 문헌이다. 또한, AD 62년경 쓰여 진 디모데전서 5장 4절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를 보더라도 효의 유용성을 알 수 있으며, 이 사건을 통하여 효의 장구함이 얼마나 긴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가(儒家)에서 효의 이점을 정치사상의 배경으로 제공해 온 것과 달리 인간사회에서 협력하고 사랑하도록 하는 해법이 효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유가의 정치사상으로 인하여 효의 가치는 우리의 반만년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오며, 지탄과 찬사를 동시에 받아왔다. 이제는 이러한 지탄과 찬사의 논란 대상이 효(孝)가 되기보다는 효(孝)로 함께하는 사회의 지렛대로 사용하자는 생각이 효에 대하여 들여다 볼수록 느끼게 되는 매력을 소개하고 싶다. 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신체를 잘 살피고 성공적 삶을 통해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만 실천하여도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부해지겠는가? 게다가 “부모의 뜻을 따르고, 사람의 일을 잘 계승하는 일”이 효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실천한다면, 나와 우리 가족은 정말 멋진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겠는가? 바로 이런 것들을 완성해나가는 것이 효일진대, 이 효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을까 싶다. 앞으로 이러한 매력에 함께 빠져들기를 제안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4-29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에 대한 단상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의 '효' 이야기 효에 대한 단상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효’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 그다지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여 지거나, 삶을 규제하는 형식으로 느껴지기에 효 이야기는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는 자유민주주의 위에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사회인 반면, 효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라는 위계질서의 고정 관념에서 출발하기에 이 둘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효는 아주 오래 전 옛 서책에서나 눈 씻고 봄직한 도덕 이야기 혹은 사상과 행동을 제약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그리고 동화의 소재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인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효는 역사시대 이전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고대의 종법(宗法)사회의 윤리도덕의 기초에서 그 기본 틀을 갖추었다. 유목문화에서 농경문화로 정착되어가는 과정 중 효 문화가 본격적으로 싹을 틔웠을 것이다. 가족이 생산단위이고, 가장이 그 가족의 중심이 되며, 가족 단위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효의 중요성이 강화되었을 터이니 말이다. 농경문화가 주를 이루던 전(前)근대,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며 과학적 분석이 세상의 잣대가 되었던 근대, 그리고 분절적으로 보았던 것들을 다시 통합적으로 다루는 탈(脫)근대라는 패러다임과 유목생활, 농경문화, 산업화, 정보화 등 생산 양식의 변화와 정치적 행보에 따라 효에 대한 제도와 인식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효의 그 중심 골격은 면면히 이어져왔다. 특히, 종교와 문화 등 각각의 세계관에 따라 그 정의가 다의적이고, 그 내용도 다양하게 발전되어왔다. 마침내, 최성규 목사(성산효대학원대학교 설립자)께서는 효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하모니라는 의미 즉, HYO(Harmony of Young and Old)라고 정립하여 효를 친근한 보편적 용어로 제시하였다.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라는 것이 가장 사전적인 정의이다. 다음으로 “부모의 뜻을 따르고, 사람의 일을 잘 계승하는 일”.을 효라 한다. 또“자신의 신체를 잘 살피고 성공적 삶을 통해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부모, 어른, 스승, 그리고 형제 및가족이라는 대상자들 사이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을 효행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다. 물론,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태어났지만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부모께서 길러주신 은혜는 잊은 채, 본인 홀로 스스로 성장한 것으로 착각한다. 아니다. 사실 부모님이 길러주신 것을 왜 모르겠는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부모의 수고와 노력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중에도 많은 사람은 부모님이 연로하시면 때때로 보살펴 드리기도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도덕적 의무감이 내게서 소홀해지는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마침내 연로하신 부모가 귀찮아지고, 내게 짐이 되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버거워진다. 한편, 효를 잘 실천하는 사람들도 부모와 자녀 간, 혹은 부모와 다른 형제간에 오해나 서운함이 생길 수 있으며, 심하면 다툼까지 생기는 일도 종종 보았다. 그리고 효는 부모님을 잘 섬기는 일 이외에도 자신의 몸을 잘 돌보고 자신을 존중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 부모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등의 중요한 여타의 효행이 있을 수 있으며, 효를 가족 내에서 책임져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복지제도에서 다룰 문제인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복지국가로 진입하며 효는 더욱 설자리를 잃어 가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사회의 각 부분 곳곳에서 효를 이야기한다. 특히 복지 분야가 그렇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효를 하자는 것이라기보다 노부모 부양의 책임을 가족 이외에서 찾아보자는 논의가 더 많아 보인다. 복지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은 노년의 마지막 때, 삶이 버거운 사람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국가 복지예산으로 모든 노년 인구를 감당하는 것에는 누구나 우려를 하지만, 보편성과 공정성으로 인해 집행부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일을 추진할 수 밖 에 없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개개인의 노후는 최대한 스스로 책임진다. 국가는 그 중 취약한 사람부터 선별적으로 보호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훌륭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그 국민적 합의 이전에 반만년을 이어 온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인 효정신과 실천을 돌이켜 봄이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부모는 자녀를 낳았고, 자녀는 부모의 손에 길러져 성장하였으며, 그 부모가 이제 늙어 약해질 때 쯤, 자녀는 사회의 간성이 된다. 성장한 자녀는 쇠약해진 노부모를 섬겨야 함이 마땅한 도리이다. 즉, 가족 내에서 노부모를 섬긴다면, 노년세대의 복지를 위한 국가의 소모적 행정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모를 섬길 수 없을 정도의 경제가 곤란한 사람과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가족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이는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처럼 부모 부양이 어려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국가에서 이와 관련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면, 부모를 봉양하는 자녀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세제혜택으로 인한 감세는 오히려 복지예산을 더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며, 부모를 섬기는 자녀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제혜택의 도움을 얼마나 체감하는 가의 문제가 따르겠지만, 아울러 부모를 섬기는 자녀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HYO, 즉 Harmony of Young and Old, 효의 실천이라고 한다. 박 희 원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4-1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