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1-18(화)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실시간뉴스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효(HYO)는 청정(淸淨) 대한민국을 만든다 Ⅱ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HYO)는 청정(淸淨) 대한민국을 만든다 Ⅱ 땅의 원리에 순응하며 먹거리로 실천하는 효 [편집부]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 이를 효행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원리를 고전에서 찾아본다. 이미『효경(孝經)』의 삼재(三才)장을 이야기한 바 있다. ‘지지의(地之義)’, 즉 ‘땅의 원리’를 이야기 하였었다. 또 서인(庶人)장에서도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분지지리(分地之利)’, 즉, ‘땅의 형질에 맞게 농사를 짓다’는 이야기다. 이 두 이야기를 토대로 내가 생활하고, 부모를 봉양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은 효행 그 자체이다. 한편,『성경』창세기에도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 3:23)하였다. 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 1:29)는 이야기가 있다.『효경(孝經)』의 「삼재장」에서처럼 사람들은 땅의 소산으로 살도록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땅에서 나는 것들을 먹고 삶을 영위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땅에서 나는 것은 식물이다. 애초에는 사람은 식물만을 먹고 살도록 설계되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타락상이 심해지면서 ‘대홍수’ 사건을 통하여 이 질서가 재편된다.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2-13) 급기야, 홍수가 일고, 방주로 들어간 노아가족과 생물 이외에 모든 생물은 멸절된다. 홍수가 그친 후,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령하기를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창 8:17) 하면서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 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한 이래로 사람들은 육식도 하게 되었다. 다만, “육지의 모든 짐승 중 너희가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레 11:2)라면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분한 이래로 우리의 삶은 오랫동안 잘 지켜 이어왔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온한 시절은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탄생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온하였던 질서가 하나씩 무너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식물을 주식으로 할 때, 몸은 건강하고, 평온하다. 간혹 고기를 먹고 싶을 때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식습관 식생활이다. 이렇게 살면 자연의 질서를 흩뜨릴 필요가 없다. 봄, 여름, 가을의 철에 따라 나는 곡물을 먹으며, 노쇠한 가축이거나, 사냥한 들짐승을 먹거리로 삼았던 시절에 사람의 건강을 염려하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이 염려된다는 말은 없었을 터이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대두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할 수 있는 축산업이 태동되었고, 자본이 투여 되면서 생산성 향상으로 대량 육축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축산으로 인한 폐해가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점이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앞에서 우리는 사람은 식물을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그리고 이후론 육식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살펴보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식물은 모두 흙으로부터 영양분을 받는다. 결국 사람들은 흙에 의존하여 흙의 양식을 먹고 사는 것이지 않는가? 식물을 골고루 먹는 것만으로 땅의 의로움을〔지지의(地之義)〕을 받아 생활하는 것이다. 즉, 영양을 고루 취할 수 있음이다. 식물은 뿌리, 줄기, 잎사귀, 열매 등으로 구성된다. 뿌리는 뿌리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잎사귀는 잎사귀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식물은 색깔이 각양각생으로 무척이나 다양하다. 빨간색, 오렌지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의 무지개 빛깔, 그리고 흰색과 검정색까지 우주의 모든 색이 망라된다. 각양각색의 식물을 골고루 먹을 수 만 있다면, 우리의 영양은 추호도 염려할 필요 없는, 건강한 삶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육식도 마찬가지다. 손수 기른 가축을 먹거나, 내가 잡을 수 있는 한도에서 사냥하고 낚시한 것만을 먹을 때, 때론 부족하지만, 지나침은 없었다. 과식이 지금과 같은 성인병을 만드는 이유일 테다. 대량 생산의 축산업이 발전하고, 냉장 시설 등의 가전제품이 생산된 이후, 육식 섭취는 과잉되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고기가 유통된다. 그 고기는 냉장시설 덕분에 오랫동안 보관이 용이해짐에 따라 언제든지 고기를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축산 조건이 이렇다보니 가격 경쟁 요구로 값싼 사료를 먹이게 되고, 사료를 아끼기 위해 운동량을 억제하고 좁은 공간에 강제 비육 생산하는 공정 등이 큰 문제로 대두된다. 결과는 조류인플루엔자, 광우병, 구제역 등의 동물 전염질병이 자주 발생하고, 이 동물들을 살 처분 하는 일들이 반복된다. 한 가지 더 간과한 일이 있는데, 이는 동물의 권리이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근래에 ‘동물복지’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비건주의자’가 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먹거리의 선택을 하늘이 정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원리에 따르자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키고,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의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온전히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땅의 소산 식물을 주식으로 그리고 육식은 바른 먹거리로 한정하는 우리의 생활은 소중한 우리의 전통인 효사상을 지켜내는 길이다. 이는 우리가실천해야 할 소중한 ‘부자자효’, ‘자연사랑’의 실천 모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11-16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HYO)는 청정(淸淨) 대한민국을 만든다Ⅰ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HYO)는 청정(淸淨) 대한민국을 만든다Ⅰ [편집부] 오늘은 조금 생소하기도 혹간 들어봤음직한 ‘나무권리’, ‘DDT’, ‘제초제’, ‘페놀’, ‘생태보전’, ‘탈핵’, ‘탈원전’, ‘비건주의’, ‘비치코밍’, ‘프라스틱 어택’ 등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지난 칼럼에서『효경(孝經)』「삼재장(三才章)」의 천(天)․지(地)․인(人)을 말하며,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 만물은 땅을 기반으로 생육하고 번식하며 성장·발전하는 정황을 지덕(地德)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지덕(地德)에 관련한 이야기는『성경』「창세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위에서의 삶을 허락하면서, 터전을 내어줄 때, 다른 생물까지도 다스리도록 권한을 부여하였다. 여기서 잠깐 ‘다스리다’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여러 의미 가운데, “사물을 일정한 목적에 따라 잘 다듬어 정리하거나 처리하다”가 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 ‘사물의 일정한 목적을’ 많이 잘 못 설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크다. 자본적 산업화, 과학화, 개별화, 그리고 합리주의 등 근대화와 연관된 단어만이 우선시 되는 추세이다. 모든 생물을 다스림에 있어 다스림을 넘어 잘못 된 목적으로만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그리고 자본 우선을 위한 정복을 해오고 있음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초제와 살충제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자연을 다스림이요, 페놀 등의 화학 유해물 방출은 산업제일주의 상업제일주의를 위한 인간의 무책임이며, 비닐․스치로폼 등과 관련된 산업쓰레기는 인간의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나태한 모습들은 아닐까? 이러한 인간의 잘못된 다스림으로 인하여 자연은 오늘도 훼손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단지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하여 조치한 정당한 행위지만, 뿌려진 살충제와 제초제는 크고 맛있는 과일의 수확 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남긴다. 그것도 우리의 후속세대에까지 말이다. 우리가 저지른 폐해를 우리보다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끼치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시대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화석 연료의 남용과 원자력의 사용의 폐해들, 탄소 발자국, 기후 온난화는 당장보다 우리의 후손에게 악영향을 줄 텐데 언제까지 모른 척 할 것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였더니, 주어진 조건에서 다스림을 뛰어 넘어 인간의 금전적 욕망으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할 마음으로 조작하고 변형시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범죄를 태연하게 반복하고 있으니 걱정스러운 일이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룰 텐데 지금 이대로 태연할 수 있을까? 그 대가는 지금보다는 우리의 후손에게 떠넘기는 결과인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깨어있는 많은 사람들이 요소요소에서 우리의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조용한 외침이 있기에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9. 3. 28. 고야시장 이재준은 나무권리를 선언하였다. “생명의 소중함을 담은 나무권리선언으로 공공수목관리에 대한 기본 이념을 바로 세우고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는 고양시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제1조 나무는 한 생명으로써 존엄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제2조 나무는 오랫동안 살아온 곳에 머무를 주거권이 있습니다 제3조 나무는 고유한 특성과 성장 방식을 존중받아야 합니다 제4조 숲은 나무가 모여 만든 가장 고귀한 공동체이며 생명의 모태입니다 제5조 나무는 인위적인 위협이나 과도한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제6조 사람과 나무는 벗이 되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제7조 나무의 권리는 제도로 보호받아야 합니다.” 천지인(天地人)의 원리를 설명할 때, 지(地)는 지덕(地德)이요 인(人)은 사람이며, 사람의 행위라 하였고, 이 땅위의 모든 생물은 인(人)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 ‘나무권리선언’은 ‘사람권리선언’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나무의 권리가 존종 되어 질 때, 우리 자녀들의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지켜질 것이다. 이를 소중하게 인식하고 지켜주는 일은 부자자효(父慈子孝) 의부모의 자애로움인 부자(父慈) 정신이다. 어린이청소년제자 사랑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슬로건은 나의 자녀와 우리의 후손을 보호하고 지켜주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러함에 어찌 효를 가족관계의 범주에만 머무르게 할 것인가? 이제는 차차로 사회로 끌어내야 한다. 인간관계의 사회만이 아니라, 나무들의 관계, 생태계에서의 관계, 전 지구적 관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효는 우리 인류가 지속되는 그 순간까지 잊지 말아야할 정신적 자산이며, 핵심 가치관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11-09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인류 행복을 지향하는 하모니의 효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인류 행복을 지향하는 하모니의 효 [편집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 17:26)라는 말씀을 앞에서 잠시 소개하였었다. 이는 하나님 섬김으로부터 인류봉사까지 성경적 효, 또는 현대적 효의 교육목표의 근원이며 배경이 된다. 그리고 현대적 효는 동양의 전통적 효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예기(禮記)』에서 열 가지 의(義)를 설명한다. 이 의(義)는 인(仁)을 모범으로 삼으며, 공자는 인을 모든 일의 근본이라 말한다. 그리고 맹자는 이 의(義)를 사회의 공의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열 가지 의란 바로 부자(父慈), 자효(子孝), 형량(兄良), 제제(弟弟), 부의(夫義), 부청(婦聽), 장혜(長惠), 유순(幼順), 군인(君仁), 신충(臣忠)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를 다섯으로 짝지어 설명할 수 있다. 부자자효(父慈子孝), 형량제제(兄良弟弟), 부의부청(夫義婦聽), 장혜유순(長惠幼順), 군인신충(君仁臣忠)이 다. 즉, 아버지는 자애하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청종하며, 어른은 베풀며, 어린이는 순응하며, 임금은 인애하고, 신하는 충심을 다한다. 다만, 오륜(五倫)에서 말한 바와 다름은 형제(兄弟)와 붕우(朋友)가 대체되었을 뿐이다. 이는 공자가 주창한 유가(儒家) 효의 근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전통문화는 공동체 사회의 문화이고, 공동체는 사람의 모임이 중심이다. 그러한 연유로 부부의 만남으로부터 출발하여, 부모·자녀, 형제간 등의 가정 내 관계를 이어가는 지혜에 대한 지침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어른과 젊은이, 혹은 친구 간의 사회적 관계 예절, 더 나아가 임금과 신하 즉, 현대적 이해로 직장 상사와 소속원 혹은 나라와 국민의 관계 등을 전제하며, 인간관계론을 펼쳐왔다. 이는 부모·자녀로부터 출발한 효의 확장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고자 하였던 동양전통사회의 큰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는 현대의 하모니 효에 다름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적 하모니 효의 최종적 관심은 인류에 대한 봉사에 있다고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과학 문명에 힘입어 전 인류가, 전 지구촌이 하나의 공동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구 한 켠에서 발생되는 환경오염, 질병발생이 결고 나와 우리, 그리고 내가 소속된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문제가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요,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이 자원 고갈만의 문제가 아니요, 국가 간, 종족 간 분쟁과 빈부의 격차에 따른 생활의 고통 등이 그들의 어려움이 아닌, 세계인의 소멸 신호탄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과거 위력적 무기를 확보한 종족이 약체 민족을 점령하고 지배하며,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면, 이제 이 지구는 무력으로 점령하고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라, 각자가 소유한 자원과 능력을 연합하여 상생하는 “하모니 효”의 정신을 계발하여야 할 시점인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부자자효”가 효의 근원이었다면, 이제는 인류에 봉사하는 정신이 효의 근원이 되어야만 한다. 거칠게 말해서, 농경중심의 봉건사회체제 유지를 위한 가족을 집단 통제화하는 수단으로 효를 사용하면서, 효 정신을 발전 시켜왔을지라도, 분명 효에 내포된 숭고한 정신이 있음은 사실이다. 이를 발전시켜 “부자자효”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효를 가족 내에만 머물러있게 해서는 안 된다. 가깝게는 이웃에 대한 봉사, 폭을 넓혀 본다면 전 지구인으로 확장해 나감이 당연시 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이웃의 불행이 결코 내게 전하여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으랴, 가까이에 있는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 그 불을 달려가 끄게 됨은 누구에게나 ‘측은지심’의 ‘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옆집의 불을 끄지 않는다면, 그 불이 내게 옮겨 붙기 때문이라도 꺼야 하는 것이다. 비단 ‘불’ 만이겠는가? 부모, 형제, 이웃의 순서대로 자신의 어려움이 그 형제에게, 그 이웃에게 전가되어가는 일들이 생기지 않는가? 매사가 한가지 일 것이다. 이웃의 불편과 불행을 방치한다면, 결국 이웃인 나에게 그 피해가 전해 오지 않겠는가? 그러한 피해가 커져서 내게 나쁜 영향을 전해오기 전에 이웃과 형제를 돌보아 함께 상생해나가는 것이 효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은 이번에 아프카니스탄의 내전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분명 목도한 바가 있었으며, 코로나-19라는 질병이 우리와는 무관하게 시작되었을지라도 직접적인 폐해가 수없이 드러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이웃과 인류는 한 가족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이제 효는 가족에서만 머무를 수 없는 현대인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야 하겠다. 가족의 범위가 혈연을 중심으로 한 내 핏줄의 가족에만 한정할 수 없는 까닭인 것이다. 물론 내 핏줄의 가족이 더욱 단단한 가족애를 공유해야함은 마땅한 일이며, 그런 후에는 이웃과 전 지구인의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봉사”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적 사회에서 ‘부자자효’로 시작된 인간관계는 이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인류봉사’의 정신으로 재무장되어야 할 때가 되었음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10-11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천·지·인의 효, 성경의 효, 그리고 현대의 효Ⅰ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천·지·인의 효, 성경의 효, 그리고 현대의 효Ⅰ 하늘(天), 땅(地), 그리고 사람(人). 즉 삼재(三才)의 도리가 효의 철학적 기초임을 앞에서 살펴 본 바 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잇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한자어로 왕(王)으로 표시한다. 왕은 나라를 다스린다. 왕은 하늘 아버지와 땅 어머니의 이치를 존중하며, 사람의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소임을 맡았다. 하지만, 이는 군주국가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는 모든 국민이 왕의 소임을 지니게 되었다. 다만 군왕을 대신한 대통령은 이제는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대표성과 민의를 조율할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하늘의 도를 따르고, 땅의 이치를 따르며, 사람들 간의 화목을 위해 효를 다하며, 수고하고 애쓰면서 삶을 영위한다는 표현이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효의 철학은 예수의 효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의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은 하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기본적으로 지닌다. 그런데 서구신학에서는 이를 효로 해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하튼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된 후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아들의 효에 관하여 주목한 사례가 있고, 몇몇 목사님들은 5월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에 맞춰, 효행 설교를 앞 다퉈하곤 하였다. 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또는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리고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는 말씀들 중심이었다. 이러한 말씀에 더 나아가 우리가 늘 듣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의 부자관계를 유가의 천·지·인의 효 원리에 대입할 수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 아버지는 천(天)이요 예수는 인(人)이자 천지인을 잇는 왕(王)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지(地)가 남는데, 이는 우리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 땅 자체라 함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1) 즉, 하늘은 천도(天道)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며, (예수는 ‘人’)으로서, 옛 군주의 왕처럼 (하나님 아버지‘天’)와 (이 땅‘地’)과 사람을 잇는 왕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게 하러 오심은 예수 자신이 ‘효자’임을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것, 즉 효를 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기독교의 효라 명명할 수 있다면 효경(孝經)의 삼재장(三才章) 효에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생각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시발이 되어, 최성규 총장께서 성산효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고, 효신학을 정립하면서 “성경의 효”로 정리되었다. ‘효’ 역시 ‘HYO(Harmony of Young and Old)’라고 부르며,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성경적 효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이 성경적 효를 현대적 효의 표상으로 동의하는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김, 이에 대하여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경천(敬天)이라는 글로 대체가 가능하다. 경천이라는 말은 본디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글귀로써,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1910년 3월 26일 사형집행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뜻으로 통용할 수 있다. 다음은 부모·어른·스승 공경과 어린이·청소년·제자 사랑으로써, 유가(儒家)에서 말한 부자자효(父慈子孝)로 대표되며 이와 상통한다. 또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막 7:10),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마 15:4) 등이 매한가지이다. 가족의 관심은 전 인류로 확장되어 간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 17:26) 하나님 섬김으로부터 시작된 성경적 효, 또는 현대적 효는 종국에 나라와 인류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귀결되어진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가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10-01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경」, 「삼재장」을 통한 효의 이해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경」, 「삼재장」을 통한 효의 이해 「효경」은 특별한 경전이다. 유가의 경전은 시, 서, 예, 악, 역으로 불리다가,『시경』만이 당대에 이르러『경』이 붙었고, 다른 경서는 송대에 이르러서야 십삼경이 확정되면서 경이 붙여진 반면,『효경』은 쓰여 진 당시부터 『효경』이었다. 『효경』이 『효경』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공자가 말한 것을 제자 증삼이 기록하였다는 전제로 처음부터 공자의 권위를 담기 위한 큰 그림일 수 있고, 둘째, 본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를 골라 책명으로 삼은 것이다. 「삼재장」에서 “효란,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질서이며, 사람의 행실이라(夫孝 天之經, 地之義(誼), 民之行也) 라는 중에 夫孝(부효)의 ‘효’자와 天之經(천지경)에서 ‘경’자를 취하여 명명한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세 가지 즉, 천, 지, 인 삼재(三才)는 인류 문명이 발전해 나가는데 필요한 요소로써,『주역』「계사전」에서 비롯하였다.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운행하면서 발전을 주재하는 천(天), 하늘이라 하는데, 그 절대적 도리, 하늘의 법칙, 천지경(天之經) 즉, 천도라 하고,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 만물은 땅을 기반으로 생육하고 번식하며 성장·발전하는 정황을 지지의(地之義), 즉 지덕(地德)라 한 것이다. 이를 합하여 천지지경(天地之經)이라 한다. 그리고 생성 변화하는 만물 중, 사람만이 우주천지와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여 그 도리를 터득하고 활용할 줄 앎을 피력한 것이다. 하늘은 왜 사람을 만물 중 으뜸으로 삼았을까? 『서경(書經)』에 “하늘의 일을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한다(天工人其代之也)”는 이야기로 설명에 갈음한다. 천지지경의 이야기는『성경』「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천지지경의 의미에 힘을 보태준다. 또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지지리(地之利)를 “원기(元氣)가 나뉘어 가볍고 맑은 양기(陽氣)는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음기(陰氣)는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라 하였는데, 이 역시 성경의 이야기와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주역(周易)』「태괘(泰卦) 상전(象傳)」에서 “하늘은 위에 있지만 그 기는 내려와 땅의 기와 섞이며, 땅의 기는 아래에 있지만, 그 기는 올라가 하늘의 기와 섞인다. 천지의 기가 섞여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군주는 이 태괘의 상을 본떠 천지자연의 도를 알맞게 하고, 또 봄에는 싹트고 가을에는 열매 맺으며, 수수는 높은 지대에서, 벼는 낮은 지대에서 잘자란다는 등의 천지자연의 적절함에 따라 봄에는 씨 뿌리고 가을에는 수확하며, 높은 곳에는 수수를 심고 낮은 곳에는 벼를 심어 천지자연의 적절함을 알맞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을 도와 다스린다” 하였다. 이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리이다. 여기에서 천지는 다시 부모라고 하는 설명을 본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오해가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남자, 어머니는 여자,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그래서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고 하는 식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 들었던 그런 식의 해석을 부질없이 되 뇌여 본다. 다시 돌아가서, 아버지는 하늘과 같이 법칙과 원칙을 세우고 지켜가는 역할, 어머니는 땅의 질서와 같은 길러냄의 본분을 지켜 자녀를 생육하고, 살림을 일으키는 고귀한 역할을 우주의 질서에 견주어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삼재장인 것이다. 효는 사람의 행위이지만, 천(天)과 지(地)의 원리와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일 터인 즉, 하늘의 원리를 기준삼고, 땅의 질서를 따라 세상을 살되 사람의 행실은 효가 기준이 된다면, 정사를 비롯한 모든 일이 원만해진다는 논리이다. 천도(天道)는 광명정대, 공평무사, 영구불변하지만, 형이상의 진리로 보이지 않는다. 그 도는 덕(德)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그 가운데에 사람이 존재하게 된다. 사람이 깨닫고 실천하는 민지행(民之行)을 통하여 이 땅에 덕이 펼쳐진다. 즉 지덕(地德)이라 하는데, 덕(德)은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설명된다. 한편 주희는 천지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를 낳아 새로운 존재에게 생명을 베풀어주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천지에는 덕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덕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인’이라하였다. 나아가 천지로부터 태어난 만물은 천지의 자식이니만큼, 천지의 ‘인’을 물려받아 자신의 본질로 삼아 태어나기에 만물의 본성은 ‘인’이 된다. 정리하자면, 사람은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천도로부터 깨닫고, 성실한 인행으로 지덕을 세움으로써, 이 땅을 진선미의 문화와 도덕의 세계를 만들어야하는 당위성의 대 전제가 삼재(三才)라 할 수 있겠다.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의 도리가 인의예지와 원형이정에 따라 완성됨이 삼재장에서 추구하는 효의 이야기임을 살펴보았다. 옛적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 주는 사람을 왕(王)이라 설명하였는데, 현대는 모든 사람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가는 왕의 역할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임을 삼재장의 효라 말하고 싶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9-14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제정일치 시대로 부터 고대 왕조에 비친 효Ⅰ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제정일치 시대로 부터 고대 왕조에 비친 효Ⅰ [뉴스인사이트] 요임금이 자신의 아들들을 제치고 순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며 양위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순이 효성스러웠다는 점이다. 그 효성을 대효(大孝)라 부르는데, 단순히 부모에게 효성스러움만이 아닌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릴 능력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단군신화가 있었다. 환웅이 삼위태백(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풍백, 우사, 운사)과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환웅이 무리들과 하늘나라에서 내려올 때, 동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 보았고, 환웅은 동방 사람들을 향해 “내가 하느님의 명에 따라 그대들을 다스리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환웅에게 절했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였으며, 삼위태백과 부하들에게 360여 가지 인간 세상의 일을 나눠 맡겼다. 환웅이 신시를 열어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자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다. 이즈음 환웅은 웅녀라는 처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우리의 시조인 단군왕검이다. 단군은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으며,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1,500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다. 여기서 우리는 ‘홍익인간’에 주목한다. 이는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며 함께 어우러져 발전해나가자는 최고 선의 푯대인 것이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 하겠다. 즉, ‘홍익인간’은 현대적 효로 이해하는 하모니 HYO 정신의 원리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단군 신화에서는 대립이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서 살기도 한다. 환웅이 세상에 내려 왔을 때, 동방사람들도 환웅의 무리와 전혀 갈등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는 과정은 천상과 지상이 결합하는 천인합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세계관이 담겨 있다 하겠다. 우리의 뿌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조선에서는 8조 금법으로 다스려졌는데, 남아있는 3개 조만을 비춰보아도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로 철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여러 부족 국가들이 생겨났는데, 북쪽에는 부여, 그리고 옥저와 동예를 통일한 고구려가 세워졌으며, 남쪽으로는 마한, 진한, 변한이 일어나고, 이후로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국이 건국되었다. 당시의 건국은 신화로부터 시작되고, 사료가 충분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보여 지는 자료 내에서 효의 정신과 그 이야기를 역사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기로 하자. 환웅과 웅녀 그리고 단군으로 세계를 열었던 우리 조상들은 환인과 환웅으로 이어졌던 세계를 이어갈 상징을 만들어 낸다.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吉鳥)인 “삼족오”이다. 고조선 때부터 ‘태양 숭배’를 하며 자신들은 ‘태양의 자손’, ‘천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늘(태양)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체를 새라고 생각하면서, 태양과 새를 결합하여 태양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삼족오”로 형상화한다.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위대한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원형의 태양 속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다. 또한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에서도 마찬가지로 왕을 상징하는 부장품들 중 삼족오 문양이 들어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삼족오를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태양(太陽)이란 양(陽)의 상징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말하면 남성을 뜻하므로 번영(繁榮)과 풍요(豊饒)를 상징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를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에 반드시 볏이 그려져 있다. 삼족오에 표현된 하나의 볏은 물을 의미하며 이는 즉 태초의 생명성을, 두 개의 날개는 화합, 부부, 상대적 균형, 따뜻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세 발은 자연의 생명성을 보여주는 새싹, 시공, 힘, 완성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한민족의 역사적 정신 속에 살아있는 삼족오는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이다. (유물 속 동물 상징, 한국문화재재단, 윤열수) 천(天)·지(地)·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천지인과 천인합일사상으로 귀결됨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이며, 이는 효의 원리로 근거 삼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천지인이 효의 근거가 됨은 차후 『효경』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8-12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전통적 효, 현대적 효 Ⅱ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전통적 효, 현대적 효 Ⅱ [뉴스인사이트] 우리의 전통적 효는 곧 바로 공자가 주창한 유가의 효를 떠올릴 터인데, 그 유가의 효는 인간관계를 정리한 오륜에 다른 바 없다고 감히 말하겠다. 오륜이란, 부자자효(父慈子孝), 형량제제(兄良弟弟), 부의부청(夫義婦聽), 장혜유순 (長惠幼順), 군인신충(君仁臣忠), 즉, 아버지는 자애하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청종하며, 어른은 베풀며, 어린이는 순응하며, 임금은 인애하고, 신하는 충심을 다한다. 예기(禮記)에서 위의 열 가지를 의(義)라고 설명한다. 이 의(義)는 인(仁)을 모범으로 삼는다. 공자는 인을 모든 일의 근본이라 말한다. 그리고 맹자는 이 의(義)를 사회의 공의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사상은 그 기원이 꽤 멀다. 그리고 그 연원에는 효가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요순시절로 돌아가자. 삼황오제가 나오는 그 요임금과 순임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요는 오제의 하나인 제곡의 손자로 총명하여 재위에 올라 역법 등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효행으로 뛰어난 순으로 하여금 섭정을 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유가의 효는 시작한다. 효행에 뛰어났던 순은 황하를 잘 다스린 우에게 하(夏) 나라 정권을 넘겨주고, 은(殷)나라를 거쳐 주(周)나라에 이르러 유가의 전례가 세워지게 된다. 은나라의 제후였던,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손주 창(昌)이 총명한 모습을 보이자, 제후의 위를 잇게 하고자 그 아버지 계력을 세자로 삼고 싶어 하니, 첫째 태백(太伯)과 둘째가 식솔들을 이끌고 그 나라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창(昌)이 장차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될 수 있게 된다. 사실 창(昌)이 총명하게 된 것은 그 어머니 태임(太妊)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역사상 최초로 태교를 했던 여인이 태임이다. 태임의 훌륭함을 본받고자 신사임당이 태임에서 자호(自號) 하였음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은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는 무왕에 이르러 은나라의 주(紂)임금을 몰아내고 천자국인 주(周)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 무왕은 세계를 제패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어린 아들 성왕(成王)이 위를 잇게 된다. 무왕과 함께 주나라를 세운 주공(周公)은 무왕의 동생으로 조카 성왕(成王)을 보필하며 섭정하였다. 이때 주공이 세운 문물제도에서 오륜을 기본으로 확립하게 된다. 이 같은 역사의 근본 바탕에는 효를 전제로 설명하는 것이 공자의 유가 정치학이다. 즉, 순을 대효라 칭하고, 주공을 달효(達孝)라 칭하여 태평성대의 근본은 효치에 있음을 강조하며, 인(仁)사상을 주창한 것이며, 이를 받은 맹자는 의를 강조하여 인의사상을 가르쳐 온 이래로 지금까지 효의 정신이 명맥을 이어 온 것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유가의 사상이 아직 유효한 곳도 있지만, 대체로 봉건적 구습으로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며, 효 정신 역시 함께 용도 폐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효는 우리에게 뿌리 깊게 현대 사회에 전통으로 이어 와, 다시금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현대적 효’라는 말에 붙이는 설명이 있다. 이름 하여 HYO! 그대로 읽으면 효이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Harmony of Young and Old 즉, “젊은 세대와 연로한 세대의 조화” 이를 효의 맥락으로 이해하기로 약속하였다. 자녀가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 글자의 의미 그대로 효(孝)라고 한다면, HYO는 부모자녀 및 가족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 그리고 그를 에워싼 환경, 나아가 전 지구적 형제애를 보듬는 것이 효인 것이다. 이는 성산효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신 최성규 총장께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시 생환한 젊은 세 청년이 효자였다는 점에서 효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이를 사회와 인류에 적용시킬 방안을 제안한 이후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과거의 전통은 군사부(君師父)라 일컬었었다. 현대사회는 군주국가가 아니니, 임금 대신 어른이 마땅한 용어일 듯싶다. 부모·어른·스승 공경을 행함이 가장 기초가 되며, 중요한 효일 것이다. 사실 효를 받는 부모·어른·스승은 어린이·청소년·제자를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호하였다. 이를 너무 당연시하다보니, 이에 대한 관심은 약해졌다 할 수 있다. 관심을 기울이면 더욱 잘 실천할 수 있기에, 현대의 효에서는 이를 강조한다. 다음으로 가족을 사랑함과 나라를 사랑하는 효로 확장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의 의식 수준에 따라 쉽게 동의 되기도 하고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을 생각하는 의식 단계가 있고 수준이 깊어지면 ‘우리’라는 의식으로 성장하며, 더욱 성장하면 ‘우리모두’라는 수준까지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자연과 환경을 살피며, 인류로까지 그 사랑의 정도를 넓힐 수 있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모쪼록 현대적 효란 이처럼 이웃사랑과 인류봉사에 목표를 두는 박애의 실천을 효라 정의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인 환경보존과 국제구호 할동이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할 수 있겠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계속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6-21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始之也)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始之也) 효를 정의할 때, 신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 ‘불감훼상’과 ‘입신양명’을 말한다. 이는『효경』에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이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요, 입신행도(立身行道)하고 양명어후세(揚名於後世)하여, 이현부모(以顯父母)함이 효지종야(孝之終也)”에서 연유한다. 효에 대한 첫 번째 정의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다. 무엇을 섬기는가에 따라 효의 내용이 다채롭고 어려워진다. 부모의 육신을 섬기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거나, 그 말씀에 순종하여 부모님의 뜻을 이어 마침내 이루어드림으로써, 기쁨을 드리는 일까지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효행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 스스로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건강, 정신의 건강까지다. 즉, 수신(修身)이다. 첫째, 자신의 신체가 건강한 것이 효의 첫발임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늘 몸이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다면, 부모에게 효하는 것은 고사하고 걱정을 끼치게 될 테니 말이다. 신체의 건강은 맹자가 말한 다섯 가지 불효에 호용투흔(好勇鬪很), 이위부모(以危父母), 즉, 용맹이 있어 다투기를 좋아해서 부모에게 위험을 끼친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건강하다면, 친구들과 함부로 다툴 일도, 다툼으로 상해를 입을 일도 없게 된다. 둘째, 바른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가꾸어나가는 삶에 열심을 내야한다. ‘나’의 삶에 대한 목표나 소망은 바른 마음과 곧은 정신에서 희망적인 목표와 소망이 생긴다. 그럼으로써 능력에 걸맞는 학업과 업무 등을 이뤄낸다면, 부모, 형제, 가족과의 행복은 물론, 학교, 직장 등의 사회 활동에 행복과 기여가 가능한 일이기에 그렇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라고 하자. 만약, 바른 마음 곧은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돈에 목표가 있게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는데, 그 잘못된 수단과 방법으로 아니함 만 못한 결과를 내어 비참한 종지부를 찍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또, 내 자존감이 매우 낮아 늘상 주눅 들어 살아간다면, 형제와 부모 사이에서는 물론, 학교나 사회생활이 즐거울 리 없으니, 이 또한 부모에게 측은한 마음을 주게 된다. 이는 불효다. 부모 형제의 걱정거리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셋째, 제 욕심만 우선하여 멋대로 행동하여 주변에 끼치는 피해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이 역시 나를 포함한 가족에게 욕을 먹이는 처사인 것이다. 소위 공중도덕이라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무례한, 사회에서 승진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무도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재물을 빼앗는 무뢰한의 행동들이야말로 내 속에 자리 잡지 않도록 날마다 다스리고 가꾸는 수신(修身)의 살을 살도록 부모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노력해야할 것이다. 바른 마음과 곧은 정신으로 내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여 누구에게라도 내세울만한 결과를 얻는다면, 이는 내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으며, 이는 당연히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는 양명(揚名)의 효(孝)가 실천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5-24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전통적 ‘효’, 현대적 ‘효’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전통적 ‘효’, 현대적 ‘효’ ‘전통’이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종종 전통을 단지 ‘옛것’이라고 오해하며 구태의연하다고 한다. 그러하니 ‘전통적’ ‘현대적’ 이라고 구분하는 것 아닐까? 엄밀히 말하자면 옛적에 있었던 일들이 그 시대를 지나면서 더하여지고 빼지는 과정을 거쳐 후대로 전해져 온 것들을 ‘전통’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적’이라 함은 “바로 앞 시대에까지 그렇게 전해진 것을 지금 우리는 이런 생각을 지니고 이해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효’는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전통적 개념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 효 이야기를 현대시대에서 거듭 꺼내면 구태의연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어버이날, 가정의 달을 지낼 때면, ‘효’ 이야기가 자연스레 우리 곁에 다가 온다. 이때의 효는 부모에게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효이다. 우리는 이를 보은이라 한다. 자녀의 보은은 크게 두 가지로 살필 수 있다. 먼저는 보은 보다는 당연한 자녀의 도리이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과 부모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이다. 그 보은의 방법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기쁨으로 돌려드리는 순종과 감사이다. 다음은 성장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의 필요에 보답하는 보은으로 우리가 말하는 ‘효도’라 하겠다. 사실, 효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 없다. 효는 그대로의 효일뿐이다.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고, 나의 신체를 강건하게 하며, 부모님의 이름을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해드리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보은은 부모의 지원에 대한 보답이다. 따라서 자녀의 보은은 적어도 부모로부터 입은 은혜만큼의 보은을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교환이론에 따른 “받은 만큼은 반드시 보은해야한다”거나, “적어도 무엇만큼”은 이라는 등의 균형적 보은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혹은 지원받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증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자녀는 부모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에 상응하는 보은을 무엇으로 설정할 수 있을까? 첫 구절부터 이야기의 구성이 불편함으로 이는 제외하기로 한다. 둘째, 영아시절 부모의 손길 없이는 한시도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에 공자는“재아가 밖으로 나가자, ‘재아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3년의 상은 천하의 공통된 상례이니, 재아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 부모가 3년은 돌보며 키워줬을 것이니, 이에 대한 보답으로 돌아가시면 3년 상은 지내야 마땅한 일이라면서, 이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제자 재아를 나무라는 장면이다. 부모가 길러주신 보은에 대하여 3년 상은 지내야 그에 대한 보은이라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럴지라도 현대적 환경에서 이를 지키는 것은 여의치 않다. 아울러 공자의 평가대로 3년 상을 지키지 않는 경우를 인하지 못하다고 할 수 만도 없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을 생각하며 각자의 보은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이다. 셋째, 유아시절부터 아동 및 청소년기까지 부모의 돌봄은 가정사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물질적, 정신적 지원은 계량화하기 쉽지 않다. 종종 여러 연구에서 한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재정적 계수가 발표되기도 하지만, 부모 개개인의 정서적 지원에 관한 계수는 여하한 경우라도 인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를 균형적 보은이라는 상상은 불가능하다. 이에 상응하는 보은을 생각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기에 효행을 강조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 듯싶다. 이에 대한 보은 감사는 해당 시기의 일상생활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감사하는 언행으로 상호 교호하는 관계의 효행을 하도록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지원은 지속된다. 혹, 물질적 지원은 자녀가 더 부유해질 수 있으나, 여전히 부모는 그 자녀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녀의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자식의 보은은 그 은혜에 닿을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만고의 진리일 게다. 그럴지라도 자녀는 부모에 대한 보은의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효라 불러온 것들 중 첫 발자국을 떼는 과정일 따름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5-10

실시간 효 이야기 기사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효(HYO)는 청정(淸淨) 대한민국을 만든다 Ⅱ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HYO)는 청정(淸淨) 대한민국을 만든다 Ⅱ 땅의 원리에 순응하며 먹거리로 실천하는 효 [편집부]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 이를 효행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원리를 고전에서 찾아본다. 이미『효경(孝經)』의 삼재(三才)장을 이야기한 바 있다. ‘지지의(地之義)’, 즉 ‘땅의 원리’를 이야기 하였었다. 또 서인(庶人)장에서도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분지지리(分地之利)’, 즉, ‘땅의 형질에 맞게 농사를 짓다’는 이야기다. 이 두 이야기를 토대로 내가 생활하고, 부모를 봉양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은 효행 그 자체이다. 한편,『성경』창세기에도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 3:23)하였다. 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 1:29)는 이야기가 있다.『효경(孝經)』의 「삼재장」에서처럼 사람들은 땅의 소산으로 살도록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땅에서 나는 것들을 먹고 삶을 영위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땅에서 나는 것은 식물이다. 애초에는 사람은 식물만을 먹고 살도록 설계되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타락상이 심해지면서 ‘대홍수’ 사건을 통하여 이 질서가 재편된다.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2-13) 급기야, 홍수가 일고, 방주로 들어간 노아가족과 생물 이외에 모든 생물은 멸절된다. 홍수가 그친 후,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령하기를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창 8:17) 하면서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 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한 이래로 사람들은 육식도 하게 되었다. 다만, “육지의 모든 짐승 중 너희가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레 11:2)라면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분한 이래로 우리의 삶은 오랫동안 잘 지켜 이어왔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온한 시절은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탄생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온하였던 질서가 하나씩 무너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식물을 주식으로 할 때, 몸은 건강하고, 평온하다. 간혹 고기를 먹고 싶을 때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식습관 식생활이다. 이렇게 살면 자연의 질서를 흩뜨릴 필요가 없다. 봄, 여름, 가을의 철에 따라 나는 곡물을 먹으며, 노쇠한 가축이거나, 사냥한 들짐승을 먹거리로 삼았던 시절에 사람의 건강을 염려하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이 염려된다는 말은 없었을 터이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대두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할 수 있는 축산업이 태동되었고, 자본이 투여 되면서 생산성 향상으로 대량 육축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축산으로 인한 폐해가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점이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앞에서 우리는 사람은 식물을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그리고 이후론 육식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살펴보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식물은 모두 흙으로부터 영양분을 받는다. 결국 사람들은 흙에 의존하여 흙의 양식을 먹고 사는 것이지 않는가? 식물을 골고루 먹는 것만으로 땅의 의로움을〔지지의(地之義)〕을 받아 생활하는 것이다. 즉, 영양을 고루 취할 수 있음이다. 식물은 뿌리, 줄기, 잎사귀, 열매 등으로 구성된다. 뿌리는 뿌리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잎사귀는 잎사귀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식물은 색깔이 각양각생으로 무척이나 다양하다. 빨간색, 오렌지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의 무지개 빛깔, 그리고 흰색과 검정색까지 우주의 모든 색이 망라된다. 각양각색의 식물을 골고루 먹을 수 만 있다면, 우리의 영양은 추호도 염려할 필요 없는, 건강한 삶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육식도 마찬가지다. 손수 기른 가축을 먹거나, 내가 잡을 수 있는 한도에서 사냥하고 낚시한 것만을 먹을 때, 때론 부족하지만, 지나침은 없었다. 과식이 지금과 같은 성인병을 만드는 이유일 테다. 대량 생산의 축산업이 발전하고, 냉장 시설 등의 가전제품이 생산된 이후, 육식 섭취는 과잉되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고기가 유통된다. 그 고기는 냉장시설 덕분에 오랫동안 보관이 용이해짐에 따라 언제든지 고기를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축산 조건이 이렇다보니 가격 경쟁 요구로 값싼 사료를 먹이게 되고, 사료를 아끼기 위해 운동량을 억제하고 좁은 공간에 강제 비육 생산하는 공정 등이 큰 문제로 대두된다. 결과는 조류인플루엔자, 광우병, 구제역 등의 동물 전염질병이 자주 발생하고, 이 동물들을 살 처분 하는 일들이 반복된다. 한 가지 더 간과한 일이 있는데, 이는 동물의 권리이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근래에 ‘동물복지’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비건주의자’가 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먹거리의 선택을 하늘이 정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원리에 따르자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키고,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의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온전히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땅의 소산 식물을 주식으로 그리고 육식은 바른 먹거리로 한정하는 우리의 생활은 소중한 우리의 전통인 효사상을 지켜내는 길이다. 이는 우리가실천해야 할 소중한 ‘부자자효’, ‘자연사랑’의 실천 모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11-16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HYO)는 청정(淸淨) 대한민국을 만든다Ⅰ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HYO)는 청정(淸淨) 대한민국을 만든다Ⅰ [편집부] 오늘은 조금 생소하기도 혹간 들어봤음직한 ‘나무권리’, ‘DDT’, ‘제초제’, ‘페놀’, ‘생태보전’, ‘탈핵’, ‘탈원전’, ‘비건주의’, ‘비치코밍’, ‘프라스틱 어택’ 등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지난 칼럼에서『효경(孝經)』「삼재장(三才章)」의 천(天)․지(地)․인(人)을 말하며,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 만물은 땅을 기반으로 생육하고 번식하며 성장·발전하는 정황을 지덕(地德)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지덕(地德)에 관련한 이야기는『성경』「창세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위에서의 삶을 허락하면서, 터전을 내어줄 때, 다른 생물까지도 다스리도록 권한을 부여하였다. 여기서 잠깐 ‘다스리다’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여러 의미 가운데, “사물을 일정한 목적에 따라 잘 다듬어 정리하거나 처리하다”가 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 ‘사물의 일정한 목적을’ 많이 잘 못 설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크다. 자본적 산업화, 과학화, 개별화, 그리고 합리주의 등 근대화와 연관된 단어만이 우선시 되는 추세이다. 모든 생물을 다스림에 있어 다스림을 넘어 잘못 된 목적으로만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그리고 자본 우선을 위한 정복을 해오고 있음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초제와 살충제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자연을 다스림이요, 페놀 등의 화학 유해물 방출은 산업제일주의 상업제일주의를 위한 인간의 무책임이며, 비닐․스치로폼 등과 관련된 산업쓰레기는 인간의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나태한 모습들은 아닐까? 이러한 인간의 잘못된 다스림으로 인하여 자연은 오늘도 훼손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단지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하여 조치한 정당한 행위지만, 뿌려진 살충제와 제초제는 크고 맛있는 과일의 수확 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남긴다. 그것도 우리의 후속세대에까지 말이다. 우리가 저지른 폐해를 우리보다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끼치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시대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화석 연료의 남용과 원자력의 사용의 폐해들, 탄소 발자국, 기후 온난화는 당장보다 우리의 후손에게 악영향을 줄 텐데 언제까지 모른 척 할 것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였더니, 주어진 조건에서 다스림을 뛰어 넘어 인간의 금전적 욕망으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할 마음으로 조작하고 변형시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범죄를 태연하게 반복하고 있으니 걱정스러운 일이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룰 텐데 지금 이대로 태연할 수 있을까? 그 대가는 지금보다는 우리의 후손에게 떠넘기는 결과인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깨어있는 많은 사람들이 요소요소에서 우리의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조용한 외침이 있기에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9. 3. 28. 고야시장 이재준은 나무권리를 선언하였다. “생명의 소중함을 담은 나무권리선언으로 공공수목관리에 대한 기본 이념을 바로 세우고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는 고양시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제1조 나무는 한 생명으로써 존엄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제2조 나무는 오랫동안 살아온 곳에 머무를 주거권이 있습니다 제3조 나무는 고유한 특성과 성장 방식을 존중받아야 합니다 제4조 숲은 나무가 모여 만든 가장 고귀한 공동체이며 생명의 모태입니다 제5조 나무는 인위적인 위협이나 과도한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제6조 사람과 나무는 벗이 되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제7조 나무의 권리는 제도로 보호받아야 합니다.” 천지인(天地人)의 원리를 설명할 때, 지(地)는 지덕(地德)이요 인(人)은 사람이며, 사람의 행위라 하였고, 이 땅위의 모든 생물은 인(人)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 ‘나무권리선언’은 ‘사람권리선언’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나무의 권리가 존종 되어 질 때, 우리 자녀들의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지켜질 것이다. 이를 소중하게 인식하고 지켜주는 일은 부자자효(父慈子孝) 의부모의 자애로움인 부자(父慈) 정신이다. 어린이청소년제자 사랑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슬로건은 나의 자녀와 우리의 후손을 보호하고 지켜주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러함에 어찌 효를 가족관계의 범주에만 머무르게 할 것인가? 이제는 차차로 사회로 끌어내야 한다. 인간관계의 사회만이 아니라, 나무들의 관계, 생태계에서의 관계, 전 지구적 관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효는 우리 인류가 지속되는 그 순간까지 잊지 말아야할 정신적 자산이며, 핵심 가치관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11-09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인류 행복을 지향하는 하모니의 효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인류 행복을 지향하는 하모니의 효 [편집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 17:26)라는 말씀을 앞에서 잠시 소개하였었다. 이는 하나님 섬김으로부터 인류봉사까지 성경적 효, 또는 현대적 효의 교육목표의 근원이며 배경이 된다. 그리고 현대적 효는 동양의 전통적 효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예기(禮記)』에서 열 가지 의(義)를 설명한다. 이 의(義)는 인(仁)을 모범으로 삼으며, 공자는 인을 모든 일의 근본이라 말한다. 그리고 맹자는 이 의(義)를 사회의 공의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열 가지 의란 바로 부자(父慈), 자효(子孝), 형량(兄良), 제제(弟弟), 부의(夫義), 부청(婦聽), 장혜(長惠), 유순(幼順), 군인(君仁), 신충(臣忠)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를 다섯으로 짝지어 설명할 수 있다. 부자자효(父慈子孝), 형량제제(兄良弟弟), 부의부청(夫義婦聽), 장혜유순(長惠幼順), 군인신충(君仁臣忠)이 다. 즉, 아버지는 자애하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청종하며, 어른은 베풀며, 어린이는 순응하며, 임금은 인애하고, 신하는 충심을 다한다. 다만, 오륜(五倫)에서 말한 바와 다름은 형제(兄弟)와 붕우(朋友)가 대체되었을 뿐이다. 이는 공자가 주창한 유가(儒家) 효의 근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전통문화는 공동체 사회의 문화이고, 공동체는 사람의 모임이 중심이다. 그러한 연유로 부부의 만남으로부터 출발하여, 부모·자녀, 형제간 등의 가정 내 관계를 이어가는 지혜에 대한 지침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어른과 젊은이, 혹은 친구 간의 사회적 관계 예절, 더 나아가 임금과 신하 즉, 현대적 이해로 직장 상사와 소속원 혹은 나라와 국민의 관계 등을 전제하며, 인간관계론을 펼쳐왔다. 이는 부모·자녀로부터 출발한 효의 확장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고자 하였던 동양전통사회의 큰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는 현대의 하모니 효에 다름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적 하모니 효의 최종적 관심은 인류에 대한 봉사에 있다고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과학 문명에 힘입어 전 인류가, 전 지구촌이 하나의 공동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구 한 켠에서 발생되는 환경오염, 질병발생이 결고 나와 우리, 그리고 내가 소속된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문제가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요,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이 자원 고갈만의 문제가 아니요, 국가 간, 종족 간 분쟁과 빈부의 격차에 따른 생활의 고통 등이 그들의 어려움이 아닌, 세계인의 소멸 신호탄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과거 위력적 무기를 확보한 종족이 약체 민족을 점령하고 지배하며,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면, 이제 이 지구는 무력으로 점령하고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라, 각자가 소유한 자원과 능력을 연합하여 상생하는 “하모니 효”의 정신을 계발하여야 할 시점인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부자자효”가 효의 근원이었다면, 이제는 인류에 봉사하는 정신이 효의 근원이 되어야만 한다. 거칠게 말해서, 농경중심의 봉건사회체제 유지를 위한 가족을 집단 통제화하는 수단으로 효를 사용하면서, 효 정신을 발전 시켜왔을지라도, 분명 효에 내포된 숭고한 정신이 있음은 사실이다. 이를 발전시켜 “부자자효”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효를 가족 내에만 머물러있게 해서는 안 된다. 가깝게는 이웃에 대한 봉사, 폭을 넓혀 본다면 전 지구인으로 확장해 나감이 당연시 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이웃의 불행이 결코 내게 전하여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으랴, 가까이에 있는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 그 불을 달려가 끄게 됨은 누구에게나 ‘측은지심’의 ‘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옆집의 불을 끄지 않는다면, 그 불이 내게 옮겨 붙기 때문이라도 꺼야 하는 것이다. 비단 ‘불’ 만이겠는가? 부모, 형제, 이웃의 순서대로 자신의 어려움이 그 형제에게, 그 이웃에게 전가되어가는 일들이 생기지 않는가? 매사가 한가지 일 것이다. 이웃의 불편과 불행을 방치한다면, 결국 이웃인 나에게 그 피해가 전해 오지 않겠는가? 그러한 피해가 커져서 내게 나쁜 영향을 전해오기 전에 이웃과 형제를 돌보아 함께 상생해나가는 것이 효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은 이번에 아프카니스탄의 내전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분명 목도한 바가 있었으며, 코로나-19라는 질병이 우리와는 무관하게 시작되었을지라도 직접적인 폐해가 수없이 드러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이웃과 인류는 한 가족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이제 효는 가족에서만 머무를 수 없는 현대인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야 하겠다. 가족의 범위가 혈연을 중심으로 한 내 핏줄의 가족에만 한정할 수 없는 까닭인 것이다. 물론 내 핏줄의 가족이 더욱 단단한 가족애를 공유해야함은 마땅한 일이며, 그런 후에는 이웃과 전 지구인의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봉사”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적 사회에서 ‘부자자효’로 시작된 인간관계는 이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인류봉사’의 정신으로 재무장되어야 할 때가 되었음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10-11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천·지·인의 효, 성경의 효, 그리고 현대의 효Ⅰ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천·지·인의 효, 성경의 효, 그리고 현대의 효Ⅰ 하늘(天), 땅(地), 그리고 사람(人). 즉 삼재(三才)의 도리가 효의 철학적 기초임을 앞에서 살펴 본 바 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잇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한자어로 왕(王)으로 표시한다. 왕은 나라를 다스린다. 왕은 하늘 아버지와 땅 어머니의 이치를 존중하며, 사람의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소임을 맡았다. 하지만, 이는 군주국가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는 모든 국민이 왕의 소임을 지니게 되었다. 다만 군왕을 대신한 대통령은 이제는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대표성과 민의를 조율할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하늘의 도를 따르고, 땅의 이치를 따르며, 사람들 간의 화목을 위해 효를 다하며, 수고하고 애쓰면서 삶을 영위한다는 표현이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효의 철학은 예수의 효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의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은 하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기본적으로 지닌다. 그런데 서구신학에서는 이를 효로 해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하튼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된 후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아들의 효에 관하여 주목한 사례가 있고, 몇몇 목사님들은 5월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에 맞춰, 효행 설교를 앞 다퉈하곤 하였다. 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또는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리고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는 말씀들 중심이었다. 이러한 말씀에 더 나아가 우리가 늘 듣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의 부자관계를 유가의 천·지·인의 효 원리에 대입할 수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 아버지는 천(天)이요 예수는 인(人)이자 천지인을 잇는 왕(王)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지(地)가 남는데, 이는 우리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 땅 자체라 함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1) 즉, 하늘은 천도(天道)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며, (예수는 ‘人’)으로서, 옛 군주의 왕처럼 (하나님 아버지‘天’)와 (이 땅‘地’)과 사람을 잇는 왕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게 하러 오심은 예수 자신이 ‘효자’임을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것, 즉 효를 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기독교의 효라 명명할 수 있다면 효경(孝經)의 삼재장(三才章) 효에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생각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시발이 되어, 최성규 총장께서 성산효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고, 효신학을 정립하면서 “성경의 효”로 정리되었다. ‘효’ 역시 ‘HYO(Harmony of Young and Old)’라고 부르며,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성경적 효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이 성경적 효를 현대적 효의 표상으로 동의하는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김, 이에 대하여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경천(敬天)이라는 글로 대체가 가능하다. 경천이라는 말은 본디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글귀로써,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1910년 3월 26일 사형집행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뜻으로 통용할 수 있다. 다음은 부모·어른·스승 공경과 어린이·청소년·제자 사랑으로써, 유가(儒家)에서 말한 부자자효(父慈子孝)로 대표되며 이와 상통한다. 또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막 7:10),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마 15:4) 등이 매한가지이다. 가족의 관심은 전 인류로 확장되어 간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 17:26) 하나님 섬김으로부터 시작된 성경적 효, 또는 현대적 효는 종국에 나라와 인류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귀결되어진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가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10-01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경」, 「삼재장」을 통한 효의 이해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경」, 「삼재장」을 통한 효의 이해 「효경」은 특별한 경전이다. 유가의 경전은 시, 서, 예, 악, 역으로 불리다가,『시경』만이 당대에 이르러『경』이 붙었고, 다른 경서는 송대에 이르러서야 십삼경이 확정되면서 경이 붙여진 반면,『효경』은 쓰여 진 당시부터 『효경』이었다. 『효경』이 『효경』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공자가 말한 것을 제자 증삼이 기록하였다는 전제로 처음부터 공자의 권위를 담기 위한 큰 그림일 수 있고, 둘째, 본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를 골라 책명으로 삼은 것이다. 「삼재장」에서 “효란,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질서이며, 사람의 행실이라(夫孝 天之經, 地之義(誼), 民之行也) 라는 중에 夫孝(부효)의 ‘효’자와 天之經(천지경)에서 ‘경’자를 취하여 명명한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세 가지 즉, 천, 지, 인 삼재(三才)는 인류 문명이 발전해 나가는데 필요한 요소로써,『주역』「계사전」에서 비롯하였다.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운행하면서 발전을 주재하는 천(天), 하늘이라 하는데, 그 절대적 도리, 하늘의 법칙, 천지경(天之經) 즉, 천도라 하고,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 만물은 땅을 기반으로 생육하고 번식하며 성장·발전하는 정황을 지지의(地之義), 즉 지덕(地德)라 한 것이다. 이를 합하여 천지지경(天地之經)이라 한다. 그리고 생성 변화하는 만물 중, 사람만이 우주천지와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여 그 도리를 터득하고 활용할 줄 앎을 피력한 것이다. 하늘은 왜 사람을 만물 중 으뜸으로 삼았을까? 『서경(書經)』에 “하늘의 일을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한다(天工人其代之也)”는 이야기로 설명에 갈음한다. 천지지경의 이야기는『성경』「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천지지경의 의미에 힘을 보태준다. 또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지지리(地之利)를 “원기(元氣)가 나뉘어 가볍고 맑은 양기(陽氣)는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음기(陰氣)는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라 하였는데, 이 역시 성경의 이야기와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주역(周易)』「태괘(泰卦) 상전(象傳)」에서 “하늘은 위에 있지만 그 기는 내려와 땅의 기와 섞이며, 땅의 기는 아래에 있지만, 그 기는 올라가 하늘의 기와 섞인다. 천지의 기가 섞여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군주는 이 태괘의 상을 본떠 천지자연의 도를 알맞게 하고, 또 봄에는 싹트고 가을에는 열매 맺으며, 수수는 높은 지대에서, 벼는 낮은 지대에서 잘자란다는 등의 천지자연의 적절함에 따라 봄에는 씨 뿌리고 가을에는 수확하며, 높은 곳에는 수수를 심고 낮은 곳에는 벼를 심어 천지자연의 적절함을 알맞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을 도와 다스린다” 하였다. 이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리이다. 여기에서 천지는 다시 부모라고 하는 설명을 본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오해가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남자, 어머니는 여자,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그래서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고 하는 식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 들었던 그런 식의 해석을 부질없이 되 뇌여 본다. 다시 돌아가서, 아버지는 하늘과 같이 법칙과 원칙을 세우고 지켜가는 역할, 어머니는 땅의 질서와 같은 길러냄의 본분을 지켜 자녀를 생육하고, 살림을 일으키는 고귀한 역할을 우주의 질서에 견주어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삼재장인 것이다. 효는 사람의 행위이지만, 천(天)과 지(地)의 원리와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일 터인 즉, 하늘의 원리를 기준삼고, 땅의 질서를 따라 세상을 살되 사람의 행실은 효가 기준이 된다면, 정사를 비롯한 모든 일이 원만해진다는 논리이다. 천도(天道)는 광명정대, 공평무사, 영구불변하지만, 형이상의 진리로 보이지 않는다. 그 도는 덕(德)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그 가운데에 사람이 존재하게 된다. 사람이 깨닫고 실천하는 민지행(民之行)을 통하여 이 땅에 덕이 펼쳐진다. 즉 지덕(地德)이라 하는데, 덕(德)은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설명된다. 한편 주희는 천지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를 낳아 새로운 존재에게 생명을 베풀어주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천지에는 덕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덕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인’이라하였다. 나아가 천지로부터 태어난 만물은 천지의 자식이니만큼, 천지의 ‘인’을 물려받아 자신의 본질로 삼아 태어나기에 만물의 본성은 ‘인’이 된다. 정리하자면, 사람은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천도로부터 깨닫고, 성실한 인행으로 지덕을 세움으로써, 이 땅을 진선미의 문화와 도덕의 세계를 만들어야하는 당위성의 대 전제가 삼재(三才)라 할 수 있겠다.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의 도리가 인의예지와 원형이정에 따라 완성됨이 삼재장에서 추구하는 효의 이야기임을 살펴보았다. 옛적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 주는 사람을 왕(王)이라 설명하였는데, 현대는 모든 사람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가는 왕의 역할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임을 삼재장의 효라 말하고 싶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9-14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제정일치 시대로 부터 고대 왕조에 비친 효Ⅰ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제정일치 시대로 부터 고대 왕조에 비친 효Ⅰ [뉴스인사이트] 요임금이 자신의 아들들을 제치고 순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며 양위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순이 효성스러웠다는 점이다. 그 효성을 대효(大孝)라 부르는데, 단순히 부모에게 효성스러움만이 아닌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릴 능력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단군신화가 있었다. 환웅이 삼위태백(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풍백, 우사, 운사)과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환웅이 무리들과 하늘나라에서 내려올 때, 동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 보았고, 환웅은 동방 사람들을 향해 “내가 하느님의 명에 따라 그대들을 다스리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환웅에게 절했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였으며, 삼위태백과 부하들에게 360여 가지 인간 세상의 일을 나눠 맡겼다. 환웅이 신시를 열어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자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다. 이즈음 환웅은 웅녀라는 처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우리의 시조인 단군왕검이다. 단군은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으며,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1,500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다. 여기서 우리는 ‘홍익인간’에 주목한다. 이는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며 함께 어우러져 발전해나가자는 최고 선의 푯대인 것이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 하겠다. 즉, ‘홍익인간’은 현대적 효로 이해하는 하모니 HYO 정신의 원리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단군 신화에서는 대립이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서 살기도 한다. 환웅이 세상에 내려 왔을 때, 동방사람들도 환웅의 무리와 전혀 갈등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는 과정은 천상과 지상이 결합하는 천인합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세계관이 담겨 있다 하겠다. 우리의 뿌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조선에서는 8조 금법으로 다스려졌는데, 남아있는 3개 조만을 비춰보아도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로 철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여러 부족 국가들이 생겨났는데, 북쪽에는 부여, 그리고 옥저와 동예를 통일한 고구려가 세워졌으며, 남쪽으로는 마한, 진한, 변한이 일어나고, 이후로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국이 건국되었다. 당시의 건국은 신화로부터 시작되고, 사료가 충분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보여 지는 자료 내에서 효의 정신과 그 이야기를 역사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기로 하자. 환웅과 웅녀 그리고 단군으로 세계를 열었던 우리 조상들은 환인과 환웅으로 이어졌던 세계를 이어갈 상징을 만들어 낸다.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吉鳥)인 “삼족오”이다. 고조선 때부터 ‘태양 숭배’를 하며 자신들은 ‘태양의 자손’, ‘천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늘(태양)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체를 새라고 생각하면서, 태양과 새를 결합하여 태양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삼족오”로 형상화한다.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위대한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원형의 태양 속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다. 또한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에서도 마찬가지로 왕을 상징하는 부장품들 중 삼족오 문양이 들어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삼족오를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태양(太陽)이란 양(陽)의 상징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말하면 남성을 뜻하므로 번영(繁榮)과 풍요(豊饒)를 상징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를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에 반드시 볏이 그려져 있다. 삼족오에 표현된 하나의 볏은 물을 의미하며 이는 즉 태초의 생명성을, 두 개의 날개는 화합, 부부, 상대적 균형, 따뜻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세 발은 자연의 생명성을 보여주는 새싹, 시공, 힘, 완성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한민족의 역사적 정신 속에 살아있는 삼족오는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이다. (유물 속 동물 상징, 한국문화재재단, 윤열수) 천(天)·지(地)·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천지인과 천인합일사상으로 귀결됨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이며, 이는 효의 원리로 근거 삼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천지인이 효의 근거가 됨은 차후 『효경』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8-12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전통적 효, 현대적 효 Ⅱ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전통적 효, 현대적 효 Ⅱ [뉴스인사이트] 우리의 전통적 효는 곧 바로 공자가 주창한 유가의 효를 떠올릴 터인데, 그 유가의 효는 인간관계를 정리한 오륜에 다른 바 없다고 감히 말하겠다. 오륜이란, 부자자효(父慈子孝), 형량제제(兄良弟弟), 부의부청(夫義婦聽), 장혜유순 (長惠幼順), 군인신충(君仁臣忠), 즉, 아버지는 자애하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청종하며, 어른은 베풀며, 어린이는 순응하며, 임금은 인애하고, 신하는 충심을 다한다. 예기(禮記)에서 위의 열 가지를 의(義)라고 설명한다. 이 의(義)는 인(仁)을 모범으로 삼는다. 공자는 인을 모든 일의 근본이라 말한다. 그리고 맹자는 이 의(義)를 사회의 공의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사상은 그 기원이 꽤 멀다. 그리고 그 연원에는 효가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요순시절로 돌아가자. 삼황오제가 나오는 그 요임금과 순임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요는 오제의 하나인 제곡의 손자로 총명하여 재위에 올라 역법 등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효행으로 뛰어난 순으로 하여금 섭정을 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유가의 효는 시작한다. 효행에 뛰어났던 순은 황하를 잘 다스린 우에게 하(夏) 나라 정권을 넘겨주고, 은(殷)나라를 거쳐 주(周)나라에 이르러 유가의 전례가 세워지게 된다. 은나라의 제후였던,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손주 창(昌)이 총명한 모습을 보이자, 제후의 위를 잇게 하고자 그 아버지 계력을 세자로 삼고 싶어 하니, 첫째 태백(太伯)과 둘째가 식솔들을 이끌고 그 나라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창(昌)이 장차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될 수 있게 된다. 사실 창(昌)이 총명하게 된 것은 그 어머니 태임(太妊)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역사상 최초로 태교를 했던 여인이 태임이다. 태임의 훌륭함을 본받고자 신사임당이 태임에서 자호(自號) 하였음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은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는 무왕에 이르러 은나라의 주(紂)임금을 몰아내고 천자국인 주(周)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 무왕은 세계를 제패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어린 아들 성왕(成王)이 위를 잇게 된다. 무왕과 함께 주나라를 세운 주공(周公)은 무왕의 동생으로 조카 성왕(成王)을 보필하며 섭정하였다. 이때 주공이 세운 문물제도에서 오륜을 기본으로 확립하게 된다. 이 같은 역사의 근본 바탕에는 효를 전제로 설명하는 것이 공자의 유가 정치학이다. 즉, 순을 대효라 칭하고, 주공을 달효(達孝)라 칭하여 태평성대의 근본은 효치에 있음을 강조하며, 인(仁)사상을 주창한 것이며, 이를 받은 맹자는 의를 강조하여 인의사상을 가르쳐 온 이래로 지금까지 효의 정신이 명맥을 이어 온 것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유가의 사상이 아직 유효한 곳도 있지만, 대체로 봉건적 구습으로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며, 효 정신 역시 함께 용도 폐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효는 우리에게 뿌리 깊게 현대 사회에 전통으로 이어 와, 다시금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현대적 효’라는 말에 붙이는 설명이 있다. 이름 하여 HYO! 그대로 읽으면 효이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Harmony of Young and Old 즉, “젊은 세대와 연로한 세대의 조화” 이를 효의 맥락으로 이해하기로 약속하였다. 자녀가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 글자의 의미 그대로 효(孝)라고 한다면, HYO는 부모자녀 및 가족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 그리고 그를 에워싼 환경, 나아가 전 지구적 형제애를 보듬는 것이 효인 것이다. 이는 성산효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신 최성규 총장께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시 생환한 젊은 세 청년이 효자였다는 점에서 효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이를 사회와 인류에 적용시킬 방안을 제안한 이후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과거의 전통은 군사부(君師父)라 일컬었었다. 현대사회는 군주국가가 아니니, 임금 대신 어른이 마땅한 용어일 듯싶다. 부모·어른·스승 공경을 행함이 가장 기초가 되며, 중요한 효일 것이다. 사실 효를 받는 부모·어른·스승은 어린이·청소년·제자를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호하였다. 이를 너무 당연시하다보니, 이에 대한 관심은 약해졌다 할 수 있다. 관심을 기울이면 더욱 잘 실천할 수 있기에, 현대의 효에서는 이를 강조한다. 다음으로 가족을 사랑함과 나라를 사랑하는 효로 확장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의 의식 수준에 따라 쉽게 동의 되기도 하고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을 생각하는 의식 단계가 있고 수준이 깊어지면 ‘우리’라는 의식으로 성장하며, 더욱 성장하면 ‘우리모두’라는 수준까지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자연과 환경을 살피며, 인류로까지 그 사랑의 정도를 넓힐 수 있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모쪼록 현대적 효란 이처럼 이웃사랑과 인류봉사에 목표를 두는 박애의 실천을 효라 정의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인 환경보존과 국제구호 할동이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할 수 있겠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계속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6-21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始之也)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始之也) 효를 정의할 때, 신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 ‘불감훼상’과 ‘입신양명’을 말한다. 이는『효경』에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이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요, 입신행도(立身行道)하고 양명어후세(揚名於後世)하여, 이현부모(以顯父母)함이 효지종야(孝之終也)”에서 연유한다. 효에 대한 첫 번째 정의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다. 무엇을 섬기는가에 따라 효의 내용이 다채롭고 어려워진다. 부모의 육신을 섬기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거나, 그 말씀에 순종하여 부모님의 뜻을 이어 마침내 이루어드림으로써, 기쁨을 드리는 일까지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효행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 스스로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건강, 정신의 건강까지다. 즉, 수신(修身)이다. 첫째, 자신의 신체가 건강한 것이 효의 첫발임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늘 몸이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다면, 부모에게 효하는 것은 고사하고 걱정을 끼치게 될 테니 말이다. 신체의 건강은 맹자가 말한 다섯 가지 불효에 호용투흔(好勇鬪很), 이위부모(以危父母), 즉, 용맹이 있어 다투기를 좋아해서 부모에게 위험을 끼친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건강하다면, 친구들과 함부로 다툴 일도, 다툼으로 상해를 입을 일도 없게 된다. 둘째, 바른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가꾸어나가는 삶에 열심을 내야한다. ‘나’의 삶에 대한 목표나 소망은 바른 마음과 곧은 정신에서 희망적인 목표와 소망이 생긴다. 그럼으로써 능력에 걸맞는 학업과 업무 등을 이뤄낸다면, 부모, 형제, 가족과의 행복은 물론, 학교, 직장 등의 사회 활동에 행복과 기여가 가능한 일이기에 그렇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라고 하자. 만약, 바른 마음 곧은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돈에 목표가 있게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는데, 그 잘못된 수단과 방법으로 아니함 만 못한 결과를 내어 비참한 종지부를 찍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또, 내 자존감이 매우 낮아 늘상 주눅 들어 살아간다면, 형제와 부모 사이에서는 물론, 학교나 사회생활이 즐거울 리 없으니, 이 또한 부모에게 측은한 마음을 주게 된다. 이는 불효다. 부모 형제의 걱정거리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셋째, 제 욕심만 우선하여 멋대로 행동하여 주변에 끼치는 피해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이 역시 나를 포함한 가족에게 욕을 먹이는 처사인 것이다. 소위 공중도덕이라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무례한, 사회에서 승진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무도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재물을 빼앗는 무뢰한의 행동들이야말로 내 속에 자리 잡지 않도록 날마다 다스리고 가꾸는 수신(修身)의 살을 살도록 부모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노력해야할 것이다. 바른 마음과 곧은 정신으로 내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여 누구에게라도 내세울만한 결과를 얻는다면, 이는 내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으며, 이는 당연히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는 양명(揚名)의 효(孝)가 실천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5-24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전통적 ‘효’, 현대적 ‘효’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전통적 ‘효’, 현대적 ‘효’ ‘전통’이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종종 전통을 단지 ‘옛것’이라고 오해하며 구태의연하다고 한다. 그러하니 ‘전통적’ ‘현대적’ 이라고 구분하는 것 아닐까? 엄밀히 말하자면 옛적에 있었던 일들이 그 시대를 지나면서 더하여지고 빼지는 과정을 거쳐 후대로 전해져 온 것들을 ‘전통’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적’이라 함은 “바로 앞 시대에까지 그렇게 전해진 것을 지금 우리는 이런 생각을 지니고 이해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효’는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전통적 개념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 효 이야기를 현대시대에서 거듭 꺼내면 구태의연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어버이날, 가정의 달을 지낼 때면, ‘효’ 이야기가 자연스레 우리 곁에 다가 온다. 이때의 효는 부모에게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효이다. 우리는 이를 보은이라 한다. 자녀의 보은은 크게 두 가지로 살필 수 있다. 먼저는 보은 보다는 당연한 자녀의 도리이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과 부모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이다. 그 보은의 방법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기쁨으로 돌려드리는 순종과 감사이다. 다음은 성장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의 필요에 보답하는 보은으로 우리가 말하는 ‘효도’라 하겠다. 사실, 효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 없다. 효는 그대로의 효일뿐이다.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고, 나의 신체를 강건하게 하며, 부모님의 이름을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해드리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보은은 부모의 지원에 대한 보답이다. 따라서 자녀의 보은은 적어도 부모로부터 입은 은혜만큼의 보은을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교환이론에 따른 “받은 만큼은 반드시 보은해야한다”거나, “적어도 무엇만큼”은 이라는 등의 균형적 보은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혹은 지원받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증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자녀는 부모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에 상응하는 보은을 무엇으로 설정할 수 있을까? 첫 구절부터 이야기의 구성이 불편함으로 이는 제외하기로 한다. 둘째, 영아시절 부모의 손길 없이는 한시도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에 공자는“재아가 밖으로 나가자, ‘재아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3년의 상은 천하의 공통된 상례이니, 재아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 부모가 3년은 돌보며 키워줬을 것이니, 이에 대한 보답으로 돌아가시면 3년 상은 지내야 마땅한 일이라면서, 이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제자 재아를 나무라는 장면이다. 부모가 길러주신 보은에 대하여 3년 상은 지내야 그에 대한 보은이라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럴지라도 현대적 환경에서 이를 지키는 것은 여의치 않다. 아울러 공자의 평가대로 3년 상을 지키지 않는 경우를 인하지 못하다고 할 수 만도 없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을 생각하며 각자의 보은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이다. 셋째, 유아시절부터 아동 및 청소년기까지 부모의 돌봄은 가정사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물질적, 정신적 지원은 계량화하기 쉽지 않다. 종종 여러 연구에서 한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재정적 계수가 발표되기도 하지만, 부모 개개인의 정서적 지원에 관한 계수는 여하한 경우라도 인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를 균형적 보은이라는 상상은 불가능하다. 이에 상응하는 보은을 생각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기에 효행을 강조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 듯싶다. 이에 대한 보은 감사는 해당 시기의 일상생활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감사하는 언행으로 상호 교호하는 관계의 효행을 하도록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지원은 지속된다. 혹, 물질적 지원은 자녀가 더 부유해질 수 있으나, 여전히 부모는 그 자녀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녀의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자식의 보은은 그 은혜에 닿을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만고의 진리일 게다. 그럴지라도 자녀는 부모에 대한 보은의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효라 불러온 것들 중 첫 발자국을 떼는 과정일 따름이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5-10
  •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 효를 만나고 보니
    [뉴스인사이트] 편집부 박희원 교수의 ‘효’ 이야기 효를 만나고 보니 효의 사전적 의미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다.” 이는 한나라의 허신이『설문해자』라는 자전류에서 해설한 의미로 우리의 국어사전에서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효(孝), 효도(孝道)에 대하여 ‘부모를 섬기다’, ‘효도하다’, ‘맏, 맏자식’, ‘본받다’ 이외에 ‘상복(喪服), 상복(喪服)을 입다’,‘거상(居喪)하다’, ‘제사지내다’로 풀이한다. 언어는 행위가 드러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효는 글자에서 보이기 전부터 있어 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역사에 드러난 효행 이전에 이미 효는 있어왔다는 논리를 펴고 싶은 까닭이다. 전적에 드러난 효의 이야기는 B.C. 1,100년에서 600년대의 주나라 금석문을 비롯하여 『상서』와 『시경』등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로부터 시작된 효의 이야기는 통치 기술의 하나로 쓰이기도 하고, 민간에 인간의 사랑과 협력을 가르치는 인성교육예법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효에 관한 이야기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인권을 무시하고 가부장적이며, 봉건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현대는 과학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유주의, 개방화된 근대에 이 무슨 해괴한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냐고 외치면서 말이다. 혹 이렇게 생각하시는 독자를 위하여 이제부터 제가 만난 효의 본질적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효의 실상은 문서로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확인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라샤펠오생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연구한 결과 노령으로 관절염을 앓고, 어금니가 빠진 상태로 오랫동안 살았던 노인의 화석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1950년대 이라크의 샤니다르 유적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역시 젊어서 크게 다쳤고, 누군가의 보호아래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터키북동쪽 조지아의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 역시 노인이 빙하기 전에 이가 다 빠진 상태로 살아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무려 1백8십만 년 전의 화석이야기다. 네안데르탈인 이야기다. 현생 인류도 우리의 이야기도 아닌데, 무슨 뜬끔 없는 이야기냐고 힐난할 수 도 있겠다. 효는 이런 배경에서 당연하게 우리의 정서로 드러난 것이지 인위적이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된 이데올로기적 비판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이거나 강요에 의한 효가 아니라 인류의 시초부터 자연스레이 행하여지던 이타적 행동이 효의 근원이요. 이를 통한 사회 구성의 원리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구체적 문헌적 사례로 『구약성경』「출애굽기」에 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소개한다. 이는 군집생활을 하던 시기에 대단위 군중의 합심을 위하여 효행의 원리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는 문헌이다. 또한, AD 62년경 쓰여 진 디모데전서 5장 4절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를 보더라도 효의 유용성을 알 수 있으며, 이 사건을 통하여 효의 장구함이 얼마나 긴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가(儒家)에서 효의 이점을 정치사상의 배경으로 제공해 온 것과 달리 인간사회에서 협력하고 사랑하도록 하는 해법이 효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유가의 정치사상으로 인하여 효의 가치는 우리의 반만년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오며, 지탄과 찬사를 동시에 받아왔다. 이제는 이러한 지탄과 찬사의 논란 대상이 효(孝)가 되기보다는 효(孝)로 함께하는 사회의 지렛대로 사용하자는 생각이 효에 대하여 들여다 볼수록 느끼게 되는 매력을 소개하고 싶다. 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신체를 잘 살피고 성공적 삶을 통해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만 실천하여도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부해지겠는가? 게다가 “부모의 뜻을 따르고, 사람의 일을 잘 계승하는 일”이 효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실천한다면, 나와 우리 가족은 정말 멋진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겠는가? 바로 이런 것들을 완성해나가는 것이 효일진대, 이 효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을까 싶다. 앞으로 이러한 매력에 함께 빠져들기를 제안한다. 박 희 원 교수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교수 - 인천광역시 효행장려지원센터장 -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 인천광역시 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 오피니언
    • 효 이야기
    2021-04-29
비밀번호 :